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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1) 경력 및 폭거 중의 행동 원래 가평군의 유생(儒生)이던 바, 작년 9월 그 군을 근거로 하여 일어나 양주·포천 방 면을 횡행하고 성질이 표한(慓悍)스러운데도 부하를 잘 돌본다. 그로써 명망이 있다. 금년 8월 수비대와 교전타가 양주군 초부면(草阜面) 고랑(高浪)에서 쓰러지자 부하의 슬픔이 대 단하였다고 전한다. 김연성(金演性) 또는 김범일(金範一) 약 37세, 양주군(楊州郡) 이담면(伊淡面) 축산리(杻山里) (1) 경력 및 폭거 중의 행동 일찍부터 학재(學才)가 있었다. 경성의 성균관(成均館)에서 배우고 박사(博士)의 호를 가 졌다. 사람들은 김박사(金博士)라고 한다. 전에 충청남도 관찰도주사(道主事)를 지냈다. 후 에 양주군의 지방위원(地方委員)을 했다. 작년 가을 황순일(黃順一)의 권유에 의하여 마침 내 폭도에 몸을 던져 의병소모관(義兵召募官)이 되었다. 그로부터 양주·가평·포천군을 횡 행하였으나 금년 봄 이래로 그의 소식이 요연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풍문도 있으나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강원도의 어느 곳에 숨어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폭거 중의 행동은 황순일(黃順一)과 같다. 이은찬(李殷賛) 또 언찬(諺讚), 헌찬(憲讚)이라고도 함. 포천군(抱川郡) 동촌면(東村面) (1) 경력 및 폭거 중의 행동 학생으로서 준수(俊秀)한 자이다. 작년 가을 박순근(朴順根)·임운명(任雲明) 등과 함께 무리를 모아 스스로 중군(中軍)이라 하고 포천·영평(永平)·가평·양주 등을 배회 출몰하였으 나 그는 부하 통솔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그의 신망은 도리어 부장(部將)인 박순근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금년 봄 이래 포천군의 기독교도 최규렴(崔奎濂)이라는 자 에 의하여 종종 귀순의 권고를 받았으나 끝내 응하지 않고 금년 8월 우리 보병 제 51연 대 길강중위(吉江中尉) 및 하상우(河相宇)라는 자의 권유가 간절하자 그달 24일 포천군 내동면(內洞面) 암현리(菴峴里)에서 박순근·임운명(任雲明) 등 1백20여 명의 귀순이 있었 으나, 이(李)는 끝내 귀순을 않고 현재 가평 산중에서 병을 요양하는 중이라는 말이 있다. 이홍응(李洪應) 포천군(抱川郡) 청송면(靑松面) 궁촌리(宮村里) (1) 경력 및 폭거 중의 행동 포천군 청송면 궁촌리의 유생(儒生)으로서 학식이 있다. 원래 경기도 이천군수(利川郡 守) 첩중(捷重)이란 자의 아들이라고 한다. 허위(許蔿)의 다시없는 부하로서 진동대장(鎭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