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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그러나 선생이 순국한 이후에도 선생의 활동과 관련된 사실들은 단편적으로 산견되고 있 다. 그러한 기록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은 1907년 9월 8일(음, 8월 1일) 양주의 회촌(檜村)으로 가서 주민 신재만(申載萬)에 게 국가를 위하여 창의할 것을 권유하고 군자금 5만 냥과 양총 및 조총 등 13정을 모집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08년 9월 20일자 일제 정보문서에 지평분견소에 이른바 귀순 의병 3명이 선생의 휘하에 있었으며 이들은 모젤총 1정과 화승총 3정을 휴대하고 있었다 고 한 사실과, 같은 해 10월 1일부터 10일 사이에 양근분견소에 귀순한 의병 1명이 역시 선생의 휘하 인물이었다고 파악한 내용 등이 그것이다. 이는 자료 기록상 착오가 있었거 나, 다른 한편 1908년까지도 생존하여 의병활동을 계속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이러한 공적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광복회(http://www.kla815.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