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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F자료壬2:선조실록 39권, 선조 26년 6월 5일 무자 10번째 기사〕 왜노에게 침탈당한 도와 침범당하지 않는 도에 대한 상세한 기록 경략이 이자(移咨)하였는데 대략에, "본국의 팔도 중에 어느 도 어느 읍은 모두 왜노가 점거하였고, 어느 도는 침범 당하였 으며, 어느 도는 아직 침범 받지 않았고, 어느 곳 어느 도는 전혀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 는가 하는 사실을 세세히 갖추어 기록하여 자복(咨復)하도록 하십시오." 하였는데, 회자(回咨)하기를, "(이상 생략) 경기도 광주(廣州)·여주(驪州)·파주(坡州)·양주(楊州)·수원(水原)·부평(富平)·이천(利川)·인천 (仁川)·장단(長湍)·남양(南陽) 등 부진과 양근(楊根)·풍덕(豐德)·가평(加平)·안산(安山)·삭령 (朔寧)·안성(安城)·마전(麻田)·고양(高陽) 등의 군, 그리고 용인(龍仁)·진위(振威)·영평(永平)· 양천(陽川)·김포(金浦)·지평(砥平)·포천(抱川)·적성(積城)·과천(果川)·금천(衿川)·통진(通津)·교 하(交河)·연천(漣川)·음죽(陰竹)·양성(陽城)·양지(陽智)·죽산(竹山) 등 현은 모두 분탕을 겪었 고 또한 점거된 일도 있었으며, 강화(江華)·교동(喬桐) 등의 부현은 아직 적이 지경에 들 어온 일이 없습니다. (이하 생략)” 〔F자료壬3: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8월 1일 무자 22번째 기사〕 적병이 원주 영원산성을 함락시켜 목사 김제갑이 전사하다 적병이 원주(原州) 영원산성(鴒原山城)을 함락시켰는데, 목사 김제갑(金悌甲)이 전사하였 다. 이에 앞서 관동(關東)의 주현(州縣)이 모두 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였으나 원주만은 온 전하였다. 적이 이미 원호(元豪)의 군사를 패배시키고 드디어 곧바로 원주로 침입하니, 원 주 목사 김제갑이 고을 안의 사대부와 서민 그리고 온 가족을 데리고 산성으로 들어갔는 데 험한 지세만 믿고 설비를 하지 않았다. 적이 두세 번 성 밖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므로 성 안의 사람들은 더욱 그들을 얕잡아보았다. 하루는 적이 잠깐 퇴각하는 체하다가 곧바 로 군사를 돌려 허점을 틈타 습격하였으므로 성이 금방 함락되었다. 김제갑은 굴하지 않 고 전사하였는데, 처자(妻子)도 모두 따라 죽었으므로 사람들이 한 가문(家門)에 충효열 (忠孝烈)이 나왔다고 하였다. 왜적이 드디어 원주에 주둔하고 군영을 지평현(砥平縣)까지 연결하여 경성에 이르는 길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