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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완미하고 우둔한 무리가 있어 전년 말에 해주(海州)·평산(平山) 부근을 소탕하였으나 본년 으로 들어와서도 계속 출몰 약탈을 감행하여 양민을 괴롭히는 자가 있었다. 특히 해주(海州)와 평산(平山) 지방에는 수괴 한정만(韓貞滿)과 김정안(金貞安)의 일당, 수안(遂安)·곡산(谷山) 지방에는 채응언(蔡應彦)이란 자 있어 같이 은현 출몰이 지극히 교 묘하여 수비대 및 헌병의 엄밀한 수색도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있어 군사령관은 제2사단장에게 명하여 일대 토벌을 실시하였다. 제2사단장은 9월 하순부터 11월 초순에 이르는 약 4순에 걸쳐 보병 제3여단장 중촌소장(中村少將)에게 보 병 16중대, 기병 2중대 및 약 80명의 헌병·경찰관을 지휘시켜 소탕 구역을 2구역으로 나 누어 흥수원(興水院)·율리(栗里)·대수구(大水口)·곡산(谷山)·시변리(市邊里)·금천(金川)·신막 (新幕)에 걸치는 권내를 동부 지구로 하고, 그 서남 개성(開城)·금천(金川)·신막(新幕)·봉산 (鳳山)·재령(載寧)·신천(信川)·태탄(苔灘)에 걸치는 권내를 서부 지구로 하여, 동부 지구에 있어서는 보병 5중대를 중요 지점에 배치하고 각 중대는 그 고정 배치된 담임 지역 내의 수색을 엄하게 하는 소탕 수단을 취하게 하였다. 서부 지구에 있어서는 다른 11중대를 우선 담당 지구 외곽 선상 요점에 병렬 배치하고, 각 중대마다 담임 수색 지대를 정하여 1일 내지 3일마다 전진하여 축차 수색망을 내선으 로 수축시키면서 행동하되, 주요 지구의 수색은 수차례 이를 반복, 주야를 가리지 않고 수색 경계를 엄하게 하여 폭도의 탈출을 예방하면서 소탕 지구내로 압박하였다. 그 결과 폭도 2백50명을 체포하였으나 수괴는 그만 잡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이것은 황해도 지방의 양반 유생 중 그 완명(頑冥)하기 짝이 없는 자가 있어 아직도 배 일사상을 가지고 음으로 폭도를 비호한 형적이 있고, 또 일반 인민도 흉도의 악랄한 보복 수단을 겁내어 그 소재 등에 관하여 조금도 토벌대에게 통고를 하지 않은 데 있었다. 이렇게 하여 토벌대의 주밀한 수색 동작도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으나, 그후 한 층 농후한 수비 배치를 하고, 또 경무기관과 협력하여 철통같은 경비를 하고 끊임없이 수 색을 속행하였기 때문에 흉도 출동의 여지가 없게 되어 각지는 점차 평온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일반 인민도 점차 각성하고 그 구폐를 고쳐 우리 수비대에 의뢰하는 태도가 생기고, 지방행정의 선도와 아울러 치평(冶平)으로 진전하였고, 그 후 3~5의 적도 가 간혹 출몰하지 않은 바 아니나 여기서 완전히 폭도의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제4장 조선 국경 외 배일 선인의 일반 동정 병합 문제의 해결이 끝나 대세는 스스로 정하여져 정강(政綱)이 혁신되고 서민은 그 업 에 안심하고 수비대·경무기관 등 경비가 완전 무결하여 비도(匪徒)의 준동을 허용치 않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