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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제3장 명치 44년 [서기 1911년]에 있어서의 토벌 일한합병이 되어 국가 만세의 기초뿐 아니라 인심도 더욱 정온하여지고 민중이 순종함을 양지(諒知)하여 백반의 시정(施政)이 적의하게 시행되어, 13도의 창생은 천양무궁(天壤無 窮)의 혜택을 입고 치평(治平)의 경사를 보게 되어, 이를 왕년에 있었던 정강(政綱)의 문 란, 폭도 초적의 백주 횡행 활보하던 때와 비하면 실로 격세의 감이 있었다. 그러나 적년(積年)의 악폐의 뿌리가 아직도 잔존되어 있는 것이 있었으니, 즉 황해도에 있는 폭도가 그것이다. 대저 황해도는 화적(火賊)의 소굴지로서 명치 40년말 경기도 삭녕 부근에 있던 적괴(賊魁) 허위(許蔿)·이인영(李寅榮)의 무리가 양으로는 창의(倡義)를 내세 워 향리의 민심을 선동하자 인접한 금천(金川)·연안(廷安) 부근의 흉도들은 바람을 타고 약탈을 자행하므로 누차 토벌에 의하여 거의 정온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평강헌병분견소 4월 10일 고산역(高山驛) 남방 20리 반 39사 1 토성(土城)헌병분견소 8월 10일 토성(土城) 동북 30리13사 1 청하(淸河)헌병분견소 1월 21일 청하(淸河) 12사 3 풍기수비대(豊基守備隊) 2월 28일 풍기(豊基) 부근40사 4 재산수비대(才山守備隊)3월 1일일월산(日月山) 남록11사상 3 순흥수비대(順興守備隊) 6일순흥(順興) 부근21사상 2 순흥수비대6일순흥(順興) 부근25사상 4 예천(禮泉)헌병분견소 6월 26일 예천(禮泉) 동방 40리12사 1 풍산역(豊山驛)헌병분견대 8월 27일 풍산역(豊山驛) 서방 약 30리 27사 2 안동수비대(安東守備隊) 9월 29일 안동 서방 약 30리10사상 5 영양(英陽)헌병분견소 11월14 일 영해 서북 약40리10사상 7 금산(錦山)헌병분견소 1월 10일 금산(錦山) 동방 20리15사 2 삼등(三登)헌병분견소4월 9일삼등(三登) 동방 약 30리17사 2 고원(高原)헌병분견소8월 7일양덕(陽德) 부근20사 1 북창(北倉)헌병분견소9일덕천 동남 약 110리20사상 3 삼등(三登)헌병분견소28일삼등 서북 약 30리12사 1 신계점(新溪店)헌병분견소 2월 21일 안변(安邊) 부근20사 3 무산(茂山) 및 보천보(普天堡)헌병분견소 3월 9일 허항령(虛項嶺) 동북 약 40리 30사 2 원산(元山)수비대 장교 이하 22명 8월 27일 마전동(馬轉洞) 서남 약 50리 29사상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