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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을 알고 그 측면에서 교묘하게 그것을 공격, 그 70을 사살하고 2백여를 부상시켜 정오경 에 그를 북방으로 궤주케 하였다. 이 폭도의 수괴는 민긍호(閔肯鎬)·이인령(李寅令)·정환하 (鄭煥夏)·신돌석(申乭石)·오영환(吳泳煥) 등이었다. 충주수비대(忠州守備隊) 한국순사대 권경시(權警視) 이하 15명은 2월 이래 원주 부근의 수색에 종사하고 있었다. 2월 28일 강림(講林)에서 숙영중, 강림(講林) 동방 10리 거리에 있는 등자치(登子峙) 부근에 민긍호(閔肯鎬)의 부하가 잠복하여 있는 것을 탐지하고 다음 29일 오전 6시 폭풍우를 무릅쓰고 강림(講林)에서 출발 사자산(獅子山)·구룡산(九龍山) 방 면으로 우회하여 등자치(登子峙)로 전진하였다. 그러자 동지 북방 약 10리 지점인 궐덕리 (蕨德里)에 민이 부하 90명과 함께 잠복하여 있는 것을 탐지하고, 오전 11시 궐덕리 동남 양 방면에서 그 부락을 포위하는 태세로 공격을 개시하자, 폭도의 일부는 동지 서방 고지 를 점령하고 대부분은 촌락 위벽(圍壁)에 의거하여 완강히 저항하였다. 순사대는 수회에 걸쳐 돌격을 반복하여 그 20명을 사살하고, 수괴 (首魁) 민긍호(閔肯鎬)를 포박하자 패잔 폭도는 동북방으로 궤주하고 순사대는 동야 강림(講林)으로 귀환 숙영하였다. 동야 민긍호의 부하 약 60명이 강림으로 역습하여 와 용감한 동작으로 수괴(首魁)를 탈 환하려고 하자 순사대는 그날 종일에 걸친 전투로 그 약간이 부상을 당하고 또 피로가 심 하여 자칫하면 혼란 상태에 빠지려 하였으나, 권경시(權警視)는 경사대를 선발하여 동촌 서남 고지를 점령하여 폭도의 측면을 공격시키고 주력은 촌락 안에서 극력 방어하였다. 그때 피아의 거리는 겨우 10수 미터로 접근하고, 폭도 중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자가 있 었다. “우리 대장 민씨는 어디 계신지 그곳에서 소리를 치시오.”하고, 이때 포박당하고 있던 민긍호(閔肯鎬)는 도주를 하려고 하였으므로 사살하였다. 그리고 폭도도 그 수괴를 구해 낼 수 없음을 알고 시체 11을 유기하고 북방으로 퇴각하였다. 이 전투에서 우리 한국 순사 4명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년 8월부터 강원도를 주로 하고 기타 충청·경상북도에 걸쳐 가장 창궐을 극하고 또 폭 동의 수창자였던 원원주진위대부(元原州鎭衛隊附) 특무정교(特務正校) 민긍호(閔肯鎬)의 말로는 이렇게 하여 종말을 고하고, 그 후 기타 수괴 임형순(任馨順)·이연년(李延䄵)·한상 열(韓相說)·한갑복(韓甲福) 등도 서로 전후하여 사살되어 점차 적세는 정온하여졌다. 이상 외에 1월부터 3월에 이르는 동안에 있어서의 토벌 개황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 폭도 토벌 개황표] 토벌을 위하여 파견된 부대(병력) 충 돌 월 일 충돌 지점폭도 수 폭도의 손 상 적요 평창(平昌)수비대장 이하 22명 1월 3일 평창(平昌) 북방 약 60리 지점 약 70사 16 낭천(狼川)수비대 6일낭천(狼川) 동남200사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