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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기세는 크게 떨치지를 못하였다. 제2장 1월에서 3월까지에 이르는 토벌 1. 경기도에 있어서의 토벌 전년 임진강 유역에 출몰한 폭도의 수괴는 강원도 방면에서 침입한 조인환(曺仁煥) 및 적성(積城) 출신인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김진묵(金溱默)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본년으로 들어오자 정계(政界)의 실각자인 전 참정 허위(許蔿)를 총수괴(總首魁)로 한 박 종한(朴宗漢)·김수민(金秀民)·김응두(金應斗)·이인영(李寅榮) 및 이은찬(李殷贊)의 무리, 강 원도 혹은 황해도에서 각기 부하 약간을 이끌고 서로 투합(投合)하여 임진강 유역 일대에 서 출몰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허위(許蔿)는 배일(排日)을 빙자하고 정의를 표방하고 또 군율(軍律)을 규정하고 겁탈·폭행을 다스렸다고 하지만, 그 내정(內情)에 있어서는 조 금도 종래의 폭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즉, 군표(軍票)를 발행하여 마음대로 물자의 조달 을 하면서 말하기를 ‘이 군표는 모부호(某富豪)에게 가서 돈으로 바꾸라 하고 만약 그것 을 거부하는 자가 있으면 타일 엄벌로써 보복하겠다’는 따위였었다. 1월 19일 북부 수비관구 사령관 강기중장(岡崎中將)은 막료 2명을 거느리고 재 경성 보 병 제51연대 제7중대를 이끌고 포천(拖川) 부근 폭도의 소탕을 실시하였으나, 아무런 소 득도 없이 21일 경성(京城)으로 귀환하였다. 1월 중순 구화장(九化場) 부근에 폭도가 도량, 그것을 토벌하기 위하여 개성 수비대 전 상대위(田上大尉)는 부하 26명과 한국 장교 이하 15명을 인솔하고 20일 개성을 출발, 거 문리(巨文里)를 경유 전진하여 21일 열은(悅隱) 부근에 폭도 집합의 보고를 받았다. 그 후 계속 전진하여 열은동(悅隱洞) 및 그 서북방 고지에 진을 치고 구식포(舊式砲) 약간을 가 지고 있는 약 3백 명의 폭도와 충돌 그 수괴 원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 부향관(附餉 官)이었던 현덕호(玄德鎬) 이하 28명을 사살하여 궤주시키고, 다시 패잔 폭도를 추격하여 22일 송탄(松灘) 부근에서 약 50의 폭도를 궤란시키고, 23일 구석리(九石里) 부근 패잔 폭도 퇴각중인 자를 추격하여 그 5명을 사살하고 남방으로 산란시키고 24일 수비지로 귀 환하였다. 이상 외에 각 수비대가 1월에서 3월에 이르는 사이의 토벌 개황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및 그 부근 폭도 토벌 개황표] 토벌을 위하여 파견된 부대(병력) 충돌월일충돌 지점폭도 수폭도의 손상적 요 기병 제17연대 장교 척후 1월 4일 송파진(松坡鎭) 남방 지곡(池谷) 약30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