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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진안(鎭安) 부근에 폭도 약 3백이 집합하고 있다는 보고에 접한 전주 수비대는 20일 특 무조장(特務曹長) 이하 30명을 파견하여 그를 토벌시켰다. 이 토벌대는 즉일 진안(鎭安)에 도착하였으나 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용담(龍潭)·삼가(三街)·고산(高山) 부근을 수색하 다가 22일 심원암(深院庵) 부근에 폭도 집합의 보고를 얻고 동지로 향하여 전진 중 폭도 약 1백과 만나 이를 공격 그 15를 사살하고 남방으로 궤주시켰다. 그들은 어느 한 지방을 습격하려고 할 때에는 미리 일시(日時)를 기하여 실행하고, 목적 을 달하면 다시 집합지와 일시를 정한 다음 몇 사람씩 분산하여 양민(良民)으로 가장, 우 리의 예봉을 벗어나는 것을 상례로 하고 있었다. 제4장 11·12월에 있어서의 폭도 토벌 1. 강원도 및 그 부근에 있어서의 토벌 10월 하순 한강 연안의 폭도를 소탕(사나사를 소각하는 등;편자 주)하고, 충주에 도착한 적창토벌대(赤倉討伐隊)는 11월 1일 충주 수비관구 사령관 산촌소좌(山村少佐)로부터 다시 신수정점(新水亭店) 및 고모곡(古毛谷) 부근의 폭도 소탕의 명을 받고 즉일 출발 박달령(朴 達嶺)·주포(周浦)를 경유 2일 신수평점(新水平店)에 도착하였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4일 원 주(原州)에 도착, 고모곡(古毛谷) 부근 토벌을 위하여 4일 경성(京城)을 출발한 판부지대 (坂部支隊)에 책응하기 위하여 6일 다시 원주에서 떠나 횡성(橫城)을 경유 고모곡(古毛谷) 으로 향하였다. 7일 풍수원(楓樹院)에 이르렀을 때 다시 삼산리(三山里)부근에 폭도 집합의 정보를 얻고 그리로 향하여 급진하였으나, 이미 도주한 후였다. 동지에서 판부지대(坂部支隊)와 연락하 고, 8일 지평(砥平)으로 향하는 도중 삼산리(三山里) 서남 약 20리 지점인 노안산(魯安山) 속에 약 2백의 폭도가 잠복 중임을 정지(偵知)하고 그를 급습, 그 28을 사살하고 궤주시킨 다음 1소대를 지평(砥平)으로 분진(分進)시키고 중대는 이수두(二水頭)에 머물렀다. 강기(岡崎) 제13사단장은 지평(砥平)·횡성(橫城)간, 고모곡(古毛谷) 부근의 폭도 토벌을 위 하여 보병 제51연대 제3대대장 판부소좌(坂部少佐)에게 동 제 12중대, 기병 제17연대 제3 중대의 1소대, 임시 산포 1소대 및 공병 제13대대의 1소대를 지휘시켜 토벌을 명하였다. 판부지대(坂部支隊)는 4일 경성(京城)을 떠나 고안(高安)·양근(楊根)을 경유 6일 광탄(廣 灘)에 도착 7일 새벽 뇌성호우(雷聲豪雨)를 무릅쓰고, 지평(砥平) 동방 ‘구둔치 재’에 도착 하였을 때 폭도 약 1백50은 그 고갯마루 각처에 구축한 산병호에서 아군을 향해 난사를 하여 왔으므로, 지대는 일부로써 그를 공격하여 궤주시켰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폭도의 주력은 삼산(三山)·석실(石室) 부근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어제 각 방면으로 도주를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