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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2. 경기도 및 그 부근에 있어서의 토벌 10월 4일 포천(抱川) 동방 약 20리 반에 있는 현등사(懸燈寺) 부근에 폭도 집합이라는 보 고에 접한 청평천(淸平川)수비대는 목촌소위(木材少尉)가 인솔하는 1소대를 파견하였다. 이 소대는 동일 현등사 남방 약 20리 지점인 대봉동(臺峰洞) 부근에서 약 50의 폭도를 구축하고 5일 포천(抱川)수비대에서 파견한 1소대와 협력하여 현등사의 폭도를 공격 궤주 시켰다. 철원(鐵原) 부근에 폭도 집합이라는 보고에 접한 금성(金城) 수비대장은 부하 42명을 인 솔하고 그곳 부근을 소탕하기 위하여 15일 밤 금성(金城) 출발, 16일 미명에 철원(鐵原)에 도착하였으나 폭도는 이미 밤새 도주하였고, 다시 심원사(深源寺) 부근에 폭도 집합이라는 보고를 얻어 17일 불의에 심원사를 습격, 약 3백의 폭도와 접전 격투하여 그 40을 사살하 고 궤주시켰다. 심원사는 장래의 화근을 끊기 위하여 소각하여 버렸다. 강기(岡崎) 제13사단장은 임진강에 출몰하는 폭도를 소탕하기 위하여 재 경성 보병 제50 연대 재8중대에게 기병 장교 이하 10기를 따르게 하여 토벌을 명하였다. 토벌대는 25일 경성을 떠나 고양(高陽)을 경유 26일 파주(坡州)로 들어가 27일 3중대로 편성, 적성(積城)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그 우종대(右縱隊)인 소대는 갈동(葛洞)·매곡(梅谷)·신암동(莘岩洞)에서 약간의 폭도를 구 축하고 그 소굴을 불태우고, 28일 마전(麻田) 및 고문리(古文里) 부근을 수색하면서 연천 (漣川)으로 들어가 폭도 약 2백과 만나 그 60을 사살하고 궤주시켰다. 29일에서 11월 4일 에 걸쳐 삭녕(朔寧)·이천(伊川)·철원(鐵原) 부근을 소탕하고, 5일부터 그 1소대를 영평(永 平)·포천(抱川)을 경유시켜 하송우(下松隅) 남방 약 30리 지점에 있는 봉선사(奉先寺)의 폭 도를 소탕시키고 의정부로 나오게 하고, 주력은 마전(麻田) 부근에 재차 적세가 성하다는 보고에 의하여 동지에 이르러 약 4백의 폭도를 공격하여 그 30을 사살하고 궤주시킨 다 음, 삭녕(朔寧)을 거쳐 9일 의정부에 이르러 분진(分進)시켰던 소대와 합류, 경성(京城)으로 귀환하였다. 3. 경상남도 및 그 부근에 있어서의 토벌 9월 전라도에서 봉기하였던 김동식(業東植)·고광순(高光詢)의 배하는 10월 경상남도로 침 입하여 거창(居昌)·안의(安義) 부근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진주(晋州) 경무 고문의 토 벌이 여의치 않아 진해만(鎭海灣) 중포병대대(重砲兵大隊)에서 파견된 진주파견대는 10월 4일 산전소위(山田少尉)가 인솔하는 1소대를 산청(山淸)·안의(安義) 방면으로 파견하고, 남 원(南原)수비대는 하사 이하 12명을 안의(安義) 방면으로 급행시켜 그와 책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