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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인솔하는 폭도 약 6백은 문경(聞慶)을 습격 전선(電線)을 파괴하고 횡포 약탈을 극해, 재 류 일본인 경무분견소 및 우편국원 등 난을 함창(咸昌)으로 피하였다. 5일 이 보고에 접 한 군사령관은 남부 수비관구 사령관에 명하여 국지대좌(菊池大佐)에게 보병 제14연대 및 보병 제47연대의 대부분, 그리고 기병 반 소대, 산포병 1대, 공병 약간을 주어 문경 부근 토벌을 명하였다. 동시에 족달지대에 훈령을 내려 이에 책응케 했다. 토벌대는 그를 5종대(五縱隊)로 나누어, 제1종대는 보병 제14연대 중대장 등전대위(藤田 大尉)가 이끌고 영천(永川)에서 청송(靑松)·진실(眞實) 부근을 소탕하면서 12일 영양(英陽) 에 도달, 13일에는 봉화(奉化) 부근의 폭도를 소멸하였다. 제2종대는 보병 제14연대장 정 택소좌(井澤少佐)가 이를 인솔하고 대구(大邱)를 떠나 안동(安東)으로 향한 다음, 일부를 봉화(奉化)·풍기(豊基) 및 예천(醴泉)으로 분견(分遣)하고, 제3종대는 보병 제14연대장 국 지대좌(菊池大佐)가 이를 인솔하고 해평(海平)·낙동(洛東)·대봉(臺封)을 경유, 12일에 문경 (聞慶)을 찔렀다. 제4종대는 보병 제14연대 중대장 수야대위(水野大尉)가 이를 인솔하고 봉화(奉化)에서 옥산(玉山) 및 상주(尙州)를 경유, 함창(咸昌) 북방에서 소수의 적을 구축 한 다음 문경(聞慶) 부근을 정찰하고, 10일 다시 상주(尙州)로 돌아와 11일 대봉(臺封)에 서 국지연대(菊池聯隊)와 합세하였다. 제5종대는 재 대전(大田) 보병 제47연대장 생전중좌 (生田中佐)가 이를 인솔하고 옥천(沃川)에서 관기장(官基場 ; 옥천 동북방)을 경유 10일 화령장(化寧場)에 이르러 그 부근에서 출몰 약탈을 자행하고 있는 폭도의 근거지가 청계 사(淸溪寺)임을 알고 12일 새벽 청계사를 습격하였으나, 폭도는 이미 괴산(槐山) 방면으로 도주한 후였다. 그래서 화령장(化寧場)에 1소대를 수비군으로 잔류시키고 13일 함창(咸昌) 을 향해 전진하였다. 족달지대(足達支隊)는 우선 충주 보병 제51연대 제8중대에서 청안(淸安)·수안보(水安堡)· 판교리(板橋里)에 각 1소대를 분견(分遣)하고, 단양(丹陽)에는 보병 제51연대 석흑중대(石 黑中隊)를 위치시키고 그 1소대를 풍기(豊基)로 분견(分遣)하고, 제천(堤川)에는 보병 제 52연대 제2중대의 1소대를 수비로 두었다. 수안보(水安堡)에 있는 소대는 폭도 약간이 문경에 머물러 있고, 그 일부는 조령관(烏嶺 關)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9일 오전 2시 야밤을 무릅쓰고 폭도를 급습하여 거의 그것을 격멸시켰다. 족달지대(足達支隊)에서 청안(淸安)으로 분견되었던 횡정(橫井) 소위가 인솔하는 1소대는 청안(淸安) 서북방 약 10리 반인 반탄(盤灘)에 폭도 약 5백이 침입한 것을 알고 12일 그 들의 식사시를 노려 습격 대타격을 주었다. 폭도는 당황하여 서쪽으로 궤주하고 일부는 반탄(盤灘) 북방 약 300m 고지에 머물러 응전하기 약 1시간 만에 드디어 시체를 유기하 고 북방으로 궤주하였다. 국지종대(菊池縱隊)는 함창(咸昌)에서 수야종대(水野縱隊)와 합세하여 13일 문경(聞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