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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군사령관은 재경성(在京城) 남부수비대 사령관 동조소장(東條少將)에게 필요한 병력을 홍 주 방면으로 파견하여 헌병 및 경찰관과 협력하여 비도를 진압하되 가급적이면 그것을 생 포하도록 힘쓰라 훈령하였다. 동시에 헌병대장 소산대좌(小山大佐)에게 홍주에 있는 헌병을 위의 파견부대와 협력시켜, 필요하다면 그 부대장의 지휘를 받도록 명하였다. 남부수비대 사령관은 보병 제60연대장에게 대대장 소좌전중(田中新助)을 지휘관으로 하는 보병 2중대(제2·제4 중대)[기관총 2정을 따르게 함], 기병 반소대로 된 1지대(一支隊)를 편 성하여 홍주성으로 보내고, 동시에 전주수비대의 보병 1소대로 하여금 그에 협력시켰다. 지대(支隊)는 27일 오후 7시 30분 서대문역에 승차, 오후 11시 천안역에 도착, 28일 밤 기병은 신례원(新禮院)에, 주력은 신창(新昌)에 숙영하였다. 29일 본대 선두에서 행진하고 있던 지대장(支隊長)은 오후 6시 30분 천전리(川前里 ; 홍주 동방 약 200m) 남방 약 300m 의 세거리에 도착 적정을 정찰한 결과, 홍주성을 완전히 포위하기 위해 그 서방(西方)을 우 회하여 주력으로써 월계(月溪) 및 그 부근을 점령하여 결성(結城)으로 통하는 도로를 눌러 야 한다고 결심했다. 30일 포위선을 형성하는 동안 폭도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총포를 난 발하였으나 성벽이 높아 성내의 사정은 전혀 불명이었다. 지대장은 폭도를 위협함과 동시에 그 상황을 정찰하고자 오전 11시 40분 성의 서면(西面) 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또 기관총은 성의 북방에 두어 동서북 3 문루(門樓) 위의 감시병을 사격하여 쫓아 버린 다음, 다시 기관총의 위치를 바꾸어 성의 서남 방면을 사격시켜 제2중 대도 전진, 서남면의 적에게 수회(數回)의 일제 사격을 가하여 적에게 약간의 사상자를 내 게 하였다. 이에 있어 지대장은 폭도에게 항복을 권고하려고 사자(使者)를 구하였으나, 적임자가 없어 드디어 실력으로써 공함(攻陷)시키기로 결심, 일부로써 적의 주요한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 에 서쪽 방향의 적을 견제하고 주력으로써 동문 및 북문을 파괴하고 성내로 돌입하기 위해 제대(諸隊)를 배치시켰다. 31일 오전 2시 30분 등소위(藤少尉)가 인솔하는 제2중대의 1소대는 서문 밖 독립 가옥에 방화하고 맹렬한 사격으로써 적을 견제하고, 성기병소위(星騎兵少尉)는 오전 2시 50분 폭파 병을 이끌고 동문으로 진격, 총화 투석을 무릅쓰고 오전 3시 10분 대폭성(大爆聲)과 함께 문짝을 비산(飛散)시켜 돌입구를 터놓자 돌격대는 곧 성내로 돌입하였다. 북문은 오전 3시 30분 폭파하였다. 폭도는 우리의 신속 과감한 돌입으로 인해 크게 혼란을 일으켜 그 대부분은 가옥내에서 우리를 사격하고 다른 일부는 큰 길에서 종사(縱射)를 해 와 마침내 시가전을 야기하였다. 26명 견, 동문 외 월계(月溪) 동방에서 포위당해 동경부 외 2명 행방불명 이 되었다 공주진위대 (公州鎭衛隊) 한병 57명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