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page

326 1907. 8. 최태평(崔太平) 부대 30여 명, 양근군 남종면 분원에서 일본 기병과 교전 1907. 9. 2 이인영, 원주에서 관동창의대장소(關東倡義大將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 으로 추대됨 1907. 9. 3 지평, 양근에서 활동하던 조인환 부대 450여 명, 양주군 연강면 덕지리 부 근으로 이동 1907. 9. 8 양주에서 활동하던 조인환 부대, 양민으로 가장하여 일본 보병 제52연대 중 대장 다나베대위가 이끄는 토벌대와 교전한 뒤 적성으로 이동, 의병 10여 명, 적성 순사분파소 습격 1907. 9. 9 적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권준 부대 300여 명과 적성 부근에서 활동하던 의 병부대, 일본 토벌대의 기습 정보를 미리 알아채고 임진강을 건너 영평군 산내리(山內里)로 이동 1907. 9.17 조인환 부대 400여 명, 광주군 분원리에서 광주수비대와 격전, 의병 20여 명 전사, 이 전투 뒤 조인환의 행방이 묘연해짐 1907. 9.24 25일까지 신창현(申昌鉉), 분원동 전투 뒤 조인환의 행방이 묘연하자 부하 들의 추대로 의병장이 됨, 24일 신창현 부대 200여 명, 양근 서북쪽 사탄 (沙灘)에서 숙영 중이던 보병 제51연대 1소대를 공격한 뒤 다시 25일 양근 상류 구포 부근까지 일본 토벌대 추격 1907. 9.30의병 30명, 양평 순수분파소를 습격한 뒤 가평으로 진군 1907. 9. 신창현 의병 부대, 양근 부근에서 활약, 적성과 철원 등지에서 활동하던 왕 희종과 김진묵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경원 가도의 동쪽을 거쳐 춘천, 양구, 낭천 부근에서 활동 1907.10.16 이인영, 김세영(金世榮)을 서울로 보내 통감 및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 상의공법전쟁단체로 인정하여 성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통문을 발송하고, 전국 각지의 의병 부대에 격문을 보내 양주 집결을 호소 1907.10.20 이인영 등 2000여 명의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陳), 지평군 상동면 삼산리에서 군사배치 1907.10.27 사나사(舍那寺)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의병 150명, 한강 연안의 의병을 토벌 하려고 파견된 재결성 제 51연대와 교전, 토벌대가 사나사를 방화 1907.10. (말) 신창현 부대, 강원도 원주에서 권득수(權得洙), 박래병(朴來秉) 부대와 합진 중이던 민긍호 부대와 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