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page

322 제75호 孫在奎는 原州鎭衛隊參尉엇다 解隊時를 際하야 그 部下將卒과 서로 謀議하고 義旗를 擧 할제 그 武器庫에서 銃一千二百梃과 彈丸四萬發을 沒收하야 가지고 陣中에 傳令하기를 우리 만일 邑中에 留營하다가 倭仇와 開戰이 되면 無辜人民의 殺傷이 만흐리라 하고 곳 出城하야 依山排陣하엿다 그런데 倭兵은 벌서 水幕에 侵入함으로 數時間의 交戰을 하야 敵幾十人을 殺하고 아울러 그 彈丸과 速財砲를 鹵獲하먜 남아지 倭兵은 다 忠州로 退走 하엿다 그 다음 朴汝成將軍과 連合하야 麟蹄郡廳과 또 分派所며 그 書記 巡査 補助員 等의 家 屋을 擊破하엿고 따라서 一進會員郵便局員은 到處에 盡斃하기로 目的하엿다 그리고 軍律 이 整肅하고 戰略이 神妙하야 關東義兵에는 가장 轟轟한 威望이 有하엿다 權仲植은 平日正尉로서 解隊時를 際하야 擧義하엿는데 그 部下는 解隊軍人과 山砲로써 組成한 것이다 楊根을 根據로 하고 京畿觀察使에게 通牒하기를 某日에 三千餘軍을 率하 고 水原龍珠寺를 入據할 터이니 白米二百石 北魚二百馱 海藿一百立을 預備等待하라 하엿 다 이것은 보면 그의 軍勢가 엇더케 盛壯한 것을 可히 知할 바이오 因하야 그의 戰績이 數年을 亘하는 동안 特著한 點이 만타고 한다 朴汝成은 江原道平康人이다 그는 三十四歲의 勃勃英氣로서 部下千餘人을 募率하고 淸風 堤川 等地를 根據로 하야 戰術上에 敵人으로 하야금 落膽한 일이 적지 아니하엿다 그의 召募將은 趙東敎요 또 其下에 黃大成, 趙●奎, 方必成, 朴德俊等이 輔佐가 되엿는데 그들 은 다 淸風人이엇다 紀元四二四○年 八月十五日에 倭將末安等과 堤川에서 交戰하야 大勝 利를 得하고 그 翌日 에 末安의 一隊兵이 다시 襲來한다는 探報를 接한 朴將軍은 몬져 劃策한바가 有하엿다 敵兵이 相距十里程에 왓다는 그時를 際하야 將軍은 臨時召集한 民 兵까지 다 合하야 總數二千餘人을 指揮하야 要害處에 設伏하엿다가 敵의 來함을 俟하야 總射擊을 開始하엿다 五時間남아의 激戰을 하다가 敵은 敗走하야 堤川邑으로 向하거늘 將軍은 또한 寧越方面을 向하야 退却하는 形狀을 示하엿다 이때 昏色은 沉沉하고 邑中은 空虛하엿는데 敵兵은 淸風街道를 沿하야 民家에 投宿하려 한다 此를 際하야 將軍은 그 旗를 回하야 不意의 攻擊을 行할제 그 郡衙前面에 임의 埋伏하엿든 軍人이 또한 應하야 一時並攻하엿다 그 腹背受敵한 倭兵은 正히 蒼黃失措하야 困境에 陷하게 되엿고 隨하야 倭警察隊가 비록 應援하엿스나 마참내 包圍中에서 勢窮力薄하야 冒死突圍하고 山谷으로 敗走하다 그때 倭兵의 死傷이 적지 안엇고 그 後로는 末安等倭將은 將軍의 名聲만 聞하 여도 크게 驚懼한다 하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