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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지평(砥平)군에 주재하는 일본 헌병분대에서 지평군 현곡(玄谷)에 사는 문명호(文命鎬)를 의병과 관련이 있다하여 구속한 후 경성지방 재판소로 이송하자 문씨 형제 친척들이 상경 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8년 12월 25일」 본월 12일 양근(楊根)군 부근에서 소수 의병이 강원도 서쪽에 주둔하는 일본 헌병 및 보 조원 3명과 교전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9년 1월 17일」 양근(楊根)군에 주재하는 일본 헌병대에서 의병 관련 협의로 김영태(金永泰)와 라봉산(羅 奉山)을 체포해 조사한 후 어제 경성재판소로 이송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9년 3월 23일」 양평군 지방에 의병이 창궐하여 민간에 전곡을 배렴(排斂)하는 고로 소요하여 피난 상경 하는 자가 다수라고 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 23일」 일전에 의병 10여 명이 양평군 서종면 문성(汶成)학교에 가서 학도들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장려하고 금화 3원을 증여했다고 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 13일」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에 사는 박만빈(朴萬彬) 부인 최씨는 나이 30인데 남편이 작년에 지평 등지서 죽자 가세가 궁핍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남편 죽은 곳을 사방에 물어 추 운 한겨울에 모험 끝에 찾아 선영(先塋) 아래 묻고 밤낮으로 일해 칠순 노모와 3살 조카를 정성껏 보살펴 쓰러져 가는 가옥을 힘을 다해 지키는데, 친가의 자매 중에 누가 재혼을 권 하면 정색하여 처음에는 죽은 남편을 섬기려 하다가 무의무탁한 노모와 조카를 위탁할 곳 이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다른 곳에 가면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라 하여 끝내 뜻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〇「독립신문 1920년 5월 11일」 기사제목 義兵傳 (六) 발행일 1920-05-11 생산정보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