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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출전:日省錄 隆熙 2年 3月 31日 承政院日記 隆熙 2年 3月 31日 官報 隆熙 2年 4月 7日 〇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3일」 3월 26일 오전 6시 이천군 라리(羅里)에서 소수 의병과 일본 수비대가 교전하고, 3월 29 일 오전 4시경 의병 10여 명이 양근(楊根)군 북부 하도면 사점(沙店)에 쳐들어가 일진회원 김영완(金永完), 지원학을 총살하고, 다시 이 마을 김덕윤(金德潤) 등 3명을 묶고 40원을 빼앗아 북쪽으로 도망쳤다 한다.(한성신문 1908년 4월 3일) 〇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5일」 본월 17일 지평(砥平)군 읍내에 있는 학교에서 신입생 20여 명과 부형 및 내외국신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학식이 있었다 한다. 양근군(楊根郡)에서 불에 탄 집을 복구하기 위하여 건축기성사를 조직하고 취지서를 널리 알리자 남중면 동문리에 사는 이종?(李鍾?)이란 11살 된 아이가 가난한 살림이나마 이를 돕고자 누차 모친을 설득하자 그 모친이 아이의 뜻을 높이 사 연목(椽木) 30주를 사서 보 조하였다 한다. <광고> 양근군(楊根郡) 고읍면(古邑面) 옥천리(玉泉里)에 사는 전 승지(承旨) 이병륜(李秉 綸)과 큰조카 전 참판 이건용(李建容)이 풍요롭지 않는 살림에도 지난 번 불에 탄 집을 보 조하기 위해 주목(株木) 50주를, 옥천리의 불 탄 집에는 각 6원과 조(租) 4석(石)을 나누어 주고, 본사에도 50원을 연보(捐補)하였기에 널리 알려 감사드리는 바이다. (양근군 건축기 성사 고백(楊根郡 建築期成社 告白)) 〇 「해조신문 1908년 4월 16일」 기사제목 戰信一通 발행일 1908-04-16 (大韓隆熙二年 四月 十六日) (木曜(목요)) 생산정보 海朝新聞 第四十三號 (앞부분 기사 생략) 양근군 북부에 의병 수십 명이 돌입하여 일진회원 두 명을 포살하였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