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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日本軍이 楊根의 龍門등 義兵根據地를 襲擊하여 民家를 燒却하다. 출전:朝鮮獨立運動 Ⅰ 民族主義運動篇 第1編 義兵運動 附1 朝鮮暴徒討伐誌 第4編 第1章 〇 「대한매일신보 1907년 8월 29일」 무소불의(無所不義) 경성(京城)~충주(忠州)간 전신선로 100여 리 전주 대부분을 의병(義 兵)이 절단하여 불통이라고 한다. 양근(楊根)~광주(廣州)군 의병(義兵)들은 광주읍내 주민들 피신하도록 선언하고 일본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일제히 습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 다. 또한 지평군 곡수동에서 의병(義兵)과 일병(日兵)이 싸우다가 일병이 방화하여 200여 호가 불에 타고 10명이 타죽었다고 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7년 8월 31일」 양근(楊根)~여주, 이천 등에서는 일병(日兵)들이 가는 곳마다 불을 질러 남아 있는 집이 없을 만큼 타버렸으니 이들의 잔폭(殘暴)한 행동과 한민족의 참혹한 광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하다. 〇 「고종시대사 1907년 8월 31일」 기사제목:이 달에 李康年이 忠州·堤川에서 다시 義兵을 연월일:隆熙 元年, 丁未(1907년, 淸 德宗 光緖 20年, 日本 明治 27年) 8月 31日(土) 이 달에 李康年이 忠州·堤川에서 다시 義兵을 일으키다. 또한 朴正彬은 金川에서, 許蔿 는 抱川에서, 李光烈은 安東에서 각각 起兵하는 등 江原·京畿·忠淸·慶尙道에서 義兵이 크 게 일어나 日本軍에게 큰 被害를 준 바 日本軍이 發惡하여 이에 대한 報復으로 驪州·楊 根·砥平·原州·堤川 등 各地에서 民間人을 殺害한 것이 3,000餘名, 放火한 民家가 5,000餘 戶에 이르다. 출전: 梅泉野錄 隆熙 元年 6月 騎驢隨筆 李康年條 大韓季年史 下 隆熙 元年 8月 續陰晴史 下 隆熙 元年 8月 28日 駐韓日本公使館記錄 電受 明治 40年 8月 23日·24日 朝鮮獨立運動 Ⅰ 民族主義運動篇 第1編 義兵運動 附1 朝鮮暴徒討伐誌 第1編 第2章 朝鮮獨立運動 Ⅰ 民族主義運動篇 第1編 義兵運動 附1 朝鮮暴徒討伐誌 第4篇 1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