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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鎭衛隊) 10명이 주둔하였는데 군비(軍費)를 민간에서 수렴하여 민원(民怨)이 자자하니 군 부에서 조처하라고 내부에 보고하다. 〇 「대한매일신보 1905년 9월 10일」 원임 의병대장(原任 義兵大將) 류인석(柳麟錫)은 올 봄, 포천(抱川) 모(某)씨를 만나 심정 을 토로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의지할 데 없이 제천(堤川)으로 향하였다 하며 또한 지난 번 박석여(朴昔女)는 죽산(竹山), 안성(安城) 등지에 무리를 모으고 이범수(李範壽)는 양근(楊 根), 려주(驪州) 등지에서 사람을 해친다고 하여 군부에서 부위(副尉) 김기원(金箕元)으로 하여금 1소대를 이끌고 순탐케 하였는데 이른바 수원의병의 영향은 아니라고 하다.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실심으로 실력을 수양하여 애국우민하는 국민 의무를 다하기를 바란다고 하다. 〇 「황성신문 1905년 11월 8일」 양근(楊根)군수 송규헌(宋奎憲)이 비도(匪徒)를 진무(鎭撫)하고 파병을 철환하고 추호전(秋 戶錢)을 감하여 주는 등 선정을 베풀어 군민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다. 〇 「고종시대사 1907년 7월 19일」 기사제목:近日에 楊根義兵將 金萬洙가 연월일:光武 11年, 丁未(1907년, 淸 德宗 光緖 20年, 日本 明治 27年) 7月 19日(金) 近日에 楊根義兵將 金萬洙가 該邑에서 活動하다. 출전:官報 隆熙 元年 1月 7日 〇 「고종시대사 1907년 8월 5일」 기사제목:앞서 軍隊解散과 京城侍衛隊義擧의 消息으로 연월일:隆熙 元年, 丁未(1907년, 淸 穆宗 同治 2年, 日本 孝明 文久 3年) 8月 5日(月) 앞서 軍隊解散과 京城侍衛隊義擧의 消息으로 激動하고 있던 原州鎭衛隊에서는 特務正校 인 閔肯鎬가 大隊長代理 正尉 金德濟를 說服하여 그와 함께 全 隊員을 同志로 만들어 이 들에게 銃器와 彈藥을 分配하고 또한 地方民에게도 武器를 支給하여 解散에 앞서 義擧를 일으켰던 바 이 날 鎭衛隊員 250名을 抱合한 原州義兵들이 日本人과 日本警務分遣所를 襲擊하여 建物을 破壞하고 또 偵察나온 日本軍忠州守備隊와 2時間 동안 交戰하여 이를 擊退시키다. 이 날부터 原州鎭衛隊員들은 該 兵營을 떠나 閔肯鎬와 金德濟를 中心으로 몇 部分으로 나누어 各 地方으로 다니며 義兵活動을 展開하였는데 金德濟는 約 500名의 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