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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〇 「황성신문 1898년 12월 24일」 楊根郡에 사는 徐相復이 예전 商理局을 설치할 때 강원도 都接長으로 횡행하며 패악이 심해, 전 砥平 孟英在가 이를 懲治하려 하자 도피했다가 맹영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들 孟日浩를 보면 전날의 치욕을 갚겠다며 행패하여 孟日浩가 도망했다는데, 지금 또 들으니 서씨가 부상 복설한다는 풍설을 듣고 소위 任房 첩문을 한 장에 7냥 5전씩 받 아 수백 장을 팔았다 하여 농상공부 훈령은 이들에게 미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 하다. 〇 「독립신문 1899년 1월 11일」 지평군 상동에 사는 安鍾燁이 향교 제향을 궐하게 한 죄와 동리 백성들을 늑탈한 죄상이 탄로나 군수가 잡아가두고 법대로 징치하려 하는데, 해군 노일에 사는 전 주부 이재하가 자신이 안종엽과 동서간이라 하며 안종엽을 풀어달라 청촉하자 군수가 안종엽을 풀어주려 고 하다. 〇 「황성신문 1899년 1월 20일」 楊根郡 斗尾別隅에 一數問茅店이 있는데 일전에 지진으로 상점이 파괴되었을 때, 다행히 그 집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옆집에 간 빈집이어서 인명은 상하지 않았다 하다. 지평군 동면 석실리 사는 안종엽은 安文成公의 후예로 년전 義擾 때 지평군 수성장을 칭 하여 민간전곡을 탈취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등 동리에 갖은 패악을 일삼아 군수 南廷薰 이 잡아 가두고 논죄하여 인민들이 기뻐하였는데, 군수가 잡류배들의 정촉을 듣고 무사 석 방하니 안씨가 기고만장하여 나를 다스릴 법관은 없다며 동리를 횡행하며 백성을 괴롭힌 다고 한다. 〇 「독립신문 1899년 5월 15일」 지평군 상동에 사는 아무개가 그 동리 사는 양반 安鍾燁에게 돈 300냥을 받을 것이 있는 데 안씨가 돈을 갚지 않아 지평군수에게 호소하여 군수가 받아주기로 하다. 그런데 지평군 수 책실인 안씨가 안종엽은 자기 일가라며 군수에게 청촉하자 군수가 오히려 아무개를 잡 아 가두었다. 〇 「황성신문 1903년 6월 16일」 지난 2일 적당 80여 명이 砥平郡 曲水場과 積城郡 읍내장에 돌입하여 상인들의 물건을 빼앗고 주민들의 재산을 탈취해 도망가자 여주군에 주둔하는 병대의 정교 元景瑞와 참교 金冑鉉이 병졸 67명을 인솔하고 가평군 險川리까지 도적들을 쫓아 우두머리를 죽이고 문 건들을 수거하여 大隊로 수송하다. 〇 「황성신문 1903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