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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4).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9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1971〔F자료4〕 (앞부분생략) 제4장 전기의병의 확대 1. 경기지역 의병 1. 이천의병 (중략) 이현전투에서 패한 김하락은 의병을 수습하였다. 그는 2월 14일 여주의 심상희를 찾아가 설득하여 군사 500여 명을 모집하여 이천으로 돌아왔다. 구연영 등도 잔여 의병들을 모집 하여 도착하니 병력이 2천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박주영을 의병대장에 추대하고 2월 28 일 활동근거지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남한산성에는 이미 심진원이 이끄는 광주의진이 진 을 치고 있었다. 여기에 이승룡의 양근의병도 합세하였다. (이하 생략) 2. 양근의병 양근 출신의 이승룡李承龍은 양근지역에서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입성하여 항쟁하다 가 관군의 꼬임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註9)이보다 앞서 광주 출신의 구연영이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양근과 지평으로 와서 의병 300여 명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이천수창의소의 주력부대의 하나로 활동하였다. 이때 이승룡도 양근의 의병들을 이끌고 들 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승룡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민영환을 만나 통곡하고 양근으로 돌아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몰아내고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그는 ‘척왜국모보수지기斥倭國母報讎之旗’ 라고 쓴 기를 30여 개 만들어 세워놓고 의병을 모아 전술훈련을 시켰다. 그는 가사를 아 들에게 맡기고 의병을 이끌고 서울을 향하여 2월 하순 음 1월 초경에 남한산성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광주군수 박기인朴基仁을 체포하여 참하였다. 註10)김하락의 이천의 병은 양근의병이 입성한 이후인 2월 28일 음 1월 16일 남한산성에 입성한 것으로 보인다. 註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