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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지만 우리 국민으로서 君臣父子의 윤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이 같은 변을 당하 여 어찌 남의 일 보듯 편안히 이부자리에 누워 있을 수 있으며 구원할 방도를 생각하 지 않겠는가. 하물며 세력 있는 거족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일국의 추앙을 받으며 대대로 벼슬을 누리며 대대로 충성을 다하여 국가와 행, 불행을 함께 한 사람들이 바 로 그들이 아니었는가. 그러므로 우리들은 초야나 시정에서 발꿈치를 돋우며 조정의 관원들이 어떻게 하여 줄까를 바라보고 있은 지 오래다. 아! 하늘은 끝내 그들에게 죄 줄 마음을 갖지 않으실 것인가. 안으로 공경대부, 밖으로 牧使와 수령들에 이르기까지 단 한 사람도 원수를 갚고 설욕하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아는 자는 듣지를 못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당나라 현종이 “24군 중에 義士는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한 말과 같다. 人道와 正道가 이렇게도 땅에 떨어졌단 말인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다.” 는 옛 교훈이 있는데 임금께서 욕을 보기가 오늘보다 더한 적이 있었는가. 오늘날 신 하로서 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장차 무슨 말로 천하 만세의 입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본시 초야의 한 백성에 지나지 않으므로 명분과 의리가 비록 녹을 먹 고 벼슬하는 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러나 평소에 춘추대의를 배운 바 있고 이 대의란 진실로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하늘에서 받은 것이니 임금의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안 되 며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선왕의 법통을 지키고 부모의 유체를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며 종묘사직이 위태 하면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민생이 함몰되면 건져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늘이야말로 제반 흉사가 일시에 다 나왔으니 비록 유생이 군사를 잘 모르지만 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을 돌아 보지 말고 시세나 역량을 헤아리지 말고 혹은 몽둥이로 혹은 장대에 깃발을 달고 일어 서야 한다. 비록 그 정상이 가엽기도 하거니와 그 형세가 외롭기도 하지만 감히 느낀 바를 풀어 내의 관원들에게 고하노니 각기 알아들으시고 스스로 결단하기 바라는 바이 다. 아! 지금이 어느 때인가. 비록 귀가 먹고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이를 갈고 팔을 휘 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유독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들만 죽은 듯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전혀 용기가 없으니 이들이 모두 흉역들과 서로 결탁해서만 그렇겠는가. 아 마도 의리에 어둡거나 반드시 禍福에 동요되어서 그럴 것이다. 의리에 어두운 자는 반 드시 임금의 명령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화복에 동요하는 자는 반드시 적의 세력이 두려워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명령이 반드시 임금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흉적 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오직 적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왕비를 폐하고 머리를 깎는 등 의 큰 변고도 임금이 명령한 것이라 하면서 시행하고 적이 꺼리는 것이라면 원수를 갚 고 머리를 보전하려는 의거도 임금의 명령이 없다 하면서 의병을 강압하는 현실이니 또한 참혹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