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page

277 여 우리 국모를 시해하는가 하면 임금의 머리를 깎으니 하늘을 이고 땅을 딛는 자라면 누구나 피를 뿜고 눈물을 마시며 원수를 갚고 설욕하려 하지 않을 것인가. 선왕의 법 을 훼손하고 신성한 우리나라의 正道를 어지럽히니 선비의 옷을 입고 선비의 관을 쓴 자라면 어찌 절치부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대로 큰 벼슬을 누린 사람들이나 柱石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의병을 일으켜 성토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떻게 천하 만세에 변 명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인륜이 없어지고 천지가 번복되는 큰 화를 눈으로 목격 하고 격동하는 의분을 참을 수 없어 일어났다. 우리는 復讐保形의 깃발을 들고 군사를 모집하였으니 절대 死生을 돌보지 않을 것이며 이기고 지는 것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의병은 장차 후세에 천하의 대의를 떨칠 것이니 그 명분이 正大한 것은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장기렴 참령, 당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당신이 내게 보낸 그 告示文이란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우리에게 보낸 告示文에 보면 우리 의병이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를 죽였다” 고 하면서 우리를 책망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그 자들이 흉적의 도당이요 나라를 위한 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먼저 죽이고서 뒤에 임금에게 아뢰는 것은 바 로 春秋大義를 실현한 것이니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인가. 또 당신의 소위 고시문에 보면 우리 의병을 보고 “公物을 약탈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왜놈들의 물자요 우리나라의 공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의병이 차지하여 적을 토벌하는 데 쓰면 무엇 이 잘못이란 것인가. 더구나 우리를 보고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모른다.”고 비난했는데 이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원수인 왜적을 다 없앴는가. 나무뿌리가 얽힌 듯한 적당을 다 무찔렀 는가. 선왕의 제도를 다 복구하였단 말인가. 성인의 대도를 다 밝혔다 할 수 있는가. 심지어는 임금께서 파천하시어 아직도 대궐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시고 국모의 장례식 은 달을 넘겨 아직 차비도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모든 공무원이 달아나거나 숨어서 조정이 텅 비었다고 하니 이 나라의 근심이 장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오늘날은 예전과 다르다” 하면서 우리를 보고 미혹을 고집하고 깨닫 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말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고집하는 바는 오직 義理뿐이다. 성패와 이해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으니 생사의 협박에도 두려울 것이 없고 禍福의 꼬임에도 동요됨이 없을 것이다. 順逆의 分別은 자연 후세의 공론이 결정할 것이다. 어찌 당신 한 사람의 말로 결정지을 문제라 할 수 있는가. 장기렴 참령, 당신은 대대로 무관의 집안에서 자라나서 이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 으니 마땅히 왜놈에게 복수 설욕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또한 尊華攘夷하여야 할 의무 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선왕에 보답하고 당신의 선조가 남긴 업적을 계승하면 안으 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밖으로도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어질 것이다. 이로써 말을 그치니 의당 당신은 동의할 줄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