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page

270 달아나고 말았다. 이리하여 대장 이필희와 서기 원용정은 단신으로 출발하여 안동을 향해 떠났다. 나와 서상열 이필근 등은 장차 다시 대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반대편인 서쪽을 향 해 떠났는데 소백산을 넘어 순흥 가는 길 옆 고개에서 흩어져 가던 포군들과 만났다. 중군 이춘영도 포군을 이끌고 순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12월 초 10일. 역시 순흥에서 유진하였다. 12월 11일. 순흥의 선비들도 거의할 뜻이 있어 향회에 격문을 보냈다. 12월 12일. 의진, 순흥에서 소를 잡고 병사들에게 먹였다. 이날 저녁 李春永이 의병대장 으로 복직하여 군병을 지휘하였다. 12월 13일. 이날도 순흥에 유진하였다. 오후에 풍기에서 오는 사람의 말이 “4, 5명의 왜 놈들이 풍기읍에 와서, 이청(吏廳)에서 자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중에서 의논하기 를 극비리에 군사를 보내 야습하면 왜놈들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빨리 저녁을 먹 고 군사를 보내려고 하는데 또다시 전언이 오기를 왜놈 수천 명이 고개를 넘어 풍기읍에 온다고 하니 읍민들이 倭患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온 읍이 소동이 나고 모두가 달아나 려 한다고 하니 우리 의병도 습격할 수 없어 이날 밤 군사를 이끌고 순흥읍을 떠났다. 12월 14일. 小川의 市店에서 유진하였다. 12월 15일. 馬芻嶺을 넘었다. 이날 삭풍이 불어 매우 추워서 군사들이 모두 얼음골짜기 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간신히 풍기에 이르렀다. 제천 선비 申芝秀가 함께 동행하였다. 12월 16일. 영춘에 도착하였다. 군수 申克休가 은근히 寬待하였다. 그 사람됨이 謹厚하 고 詳密하여 모두가 칭송하였다. 인하여 유숙하다. 12월 17일. 春城에서 유진하였다. 12월 18일. 영월을 향해 移陣하였다. 영월 군수 李寅奎는 개화파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외로운 군사로 잠시라도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군졸을 이끌 고 산골의 포군을 더 모집하여 병세가 조금 더 강해지면 그런 후에 다시 서쪽(평안도)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때 천우신조로 毅庵 柳麟錫 선생이 진중에 오셨다. 선생은 故 持平 省齋 선생의 從姪로서 이름은 인석이며 자는 汝成이다. 처음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하에서 배 우다가 화서 선생이 돌아가신 후 重庵 김평묵 선생과 성재 선생에 사사하였다. 그 학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