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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敬庵 徐相烈을 위한 祭文 1897년 정유 3월 10일 오호! 고인이 한 말에 “살아서 욕된 것은 죽어서 영광된 것만 못하다”고 했으니 공은 마 땅히 죽어야 할 데에서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울 뿐 아니라 그 영광은 해와 달이 앞을 다툰다 할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없고 삶이 바로 욕이며 그 욕은 세월이 갈수록 더합니다. 오호! 군부가 머리를 깎고 옷 을 갈아입은 욕과 국모가 시해당한 화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두 왕릉을 파헤친 일보다 더 한 욕일 것입니다. 또 開化論이 우리 문화를 흐리게 하고 백성을 무기로 만든 것은 을미 년 8월의 국모시해보다 더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는 나라에서 의병을 권 장하였는데 을미년의 변란 때에는 도리어 의병을 정부가 토벌하려 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時俗이 변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義理가 바뀌어서 그런 것입니까. 하늘 을 우러러 보아도 아무 말이 없고 땅에 엎드려 地神에게 빌어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 맺힌 한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유감으로 남을 것이며 죽은 영혼의 눈을 감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리를 위해 죽은 사람은 비록 이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더 라도 앞서 가신 哲人들과 같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서 욕된 사람들은 비록 그 뜻이 풀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깨끗이 원수를 갚을 길이 막연하니 이것이 운명인가 아 닌가. 아아! 애통하다. 흠향하옵소서. 實谷 李弼熙를 위한 제문 1899년 기해 10월 15일 오호! 실곡 당신은 타고난 英姿에 강개한 회포를 간직하였으며 忠業을 이어받아 부지런 히 덕과 학문을 닦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重菴과 省齊 두 스승에게 배워 앞서지도 않고 뒤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군소배들이 날뛰고 거짓 학설과 정책으로 나라의 앞길을 막아서니 동으로는 왜와 통하고 서로는 양이를 불러들여 임진왜 란의 원수를 아직 갚지 못하고 있는데 또다시 을미의 화를 당하고 머리를 깎이고 옷까지 벗게 되었으니 무엇이 그리 꺼리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이때 士林들이 들고 있어나 의병의 깃발을 들어 한마음으로 토적을 맹서한다고 팔도에 격문을 띄웠습니다. 그러나 당 신은 나와 헤어져 이역 풍상에 얼마나 추위와 주림을 당했겠습니까. 발은 고추와 같이 부 르트고 머리카락은 흰 실과 같았습니다. 누추한 시골을 돌아다니다가 공자의 영정을 모시 고 어느 곳에 모실까 하다가 요동이 적당하다 하였습니다. 요동의 민속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하는데 다행히 지난 해 여름에 옛 모습대로 사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 기 흉한 소식(실곡의 訃告)이 이르러 두견이 울고 원숭이가 따라 우니 산천이 슬퍼하였습 니다. 하늘이여,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당신의 혼은 동쪽으로 가고 나의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