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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실지 감히 알 수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 뵈옵고 말씀드리 고 싶지만 불행히도 이 몸이 병으로 일어설 수 없으며 거기다 지난 해 8월에는 또다시 子 婦가 흉측한 참상을 당하여 그 아픔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집안의 사소한 일들을 수습할 사람이 없고 집의 아이가 재혼을 해야 하기에 제가 일을 모두 처리해 주어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초상과 혼사에 드는 비용 때문에 빚이 산더미와 같아 선생을 찾아뵙지 못 하고 구구한 私情만 늘어놓았으니 저의 과실을 특별히 양찰하시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신지수가 의암 선생의 상소를 받들고 요동에서 서울에 도착하여 처음에는 法部主事가 되 더니 다음에 忠淸視察使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분한 나머지 시 한 수를 짓는다. (중략) 무술 8월 朴貞洙가 요동에서 돌아왔다. 의암 류인석의 答書가 마침 도착하였는데 그 내 용은 다음과 같다. 이역 땅에 온 지 벌써 몇 년이 되었으나 만고 대의는 한마음으로 잃지 않았고 당신을 연모하는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나, 류인석은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섭섭하였는데 거듭 편지를 보내주셔서 마치 직접 얼굴을 뵌 듯 위로가 됩니다. 선생이 하신 말씀 이 세상에 더욱더 절실하고 원통한 마음 몸에 더욱 굳으니 自守하는 마음 혹시라도 해이 해질까 두려워 한층 더 힘쓰고 있습니다. (중략) 존체에 큰 손상을 입으시고 거기다 자 부님의 참상을 당하시고 거기다가 적들의 침해를 입으셨다고 하니 매우 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나, 류인석은 나라를 떠난 뒤에도 復讎와 復舊를 기약하고 中華[문명]의 脈 을 보존하려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임금님의 돌아오라는 召命이 있어 잠시 귀국하였습니다만 원수를 갚고 이 나라가 다 시 옛날과 같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집에 들러서 喪事를 마쳤으나 나라 일이 영원히 그릇된 것을 통곡하면서 다시 요 동으로 떠나갑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만고의 華脈이 땅에 떨어졌으니 아무리 고생 을 하고서라도 옛 제도를 복구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중략) 무술(1898) 6월 21일 기해(1899) 4월 實谷 李弼熙 편에 다시 서신을 의암에게 전했다. 오랑캐의 침공을 받아 중국의 명나라 왕실이 남쪽으로 천도하니 우리나라에 尤庵 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