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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영월에서 선생과 헤어진 뒤로 가을이 가고 해가 바뀌었습니다. 서신이 압록강에서 막혔는 지 또 가던 말이 요동 땅에서 가지 않고 울고 있는 것인지, 하루도 선생을 잊은 일이 없 습니다. 지난 해 겨울, 안신모 군을 통해 선생의 안부를 들었는데 신수가 옛날과 같다 하 시니 백만 번 다행입니다. (장충식)제가 義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이후 석유로 상한 귀가 좀처럼 낫지 않아 말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또 요동의 강 물이 불어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이 시골 구 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우울하기 짝이 없고 온갖 병마가 찾아와 몇 달 동안이나 신음 하였습니다. 다시 회생할 가망은 없고 오직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굴이 여위고 몸이 쇠약하여 가을과 겨울 두 계절에 父子 一門이 적들의 위협 속에 실오라기 같은 목숨 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분수와 이치에 맞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죽고 사는 것은 염려 할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직 전일의 개화 판국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들던 무리들은 이 름과 이익[名利]만 노리고 예의염치를 망각하고 동분서주하면서 적들과 힘을 합하여 어깨 를 쳐들고 꼬리를 치면서 벼슬자리만 노리니 이 같은 나라의 원수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 다. 우리는 전에 없는 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물건과 하찮은 일에 마음을 두고 겉 으로는 승냥이처럼 행세하지만 속은 여우같이 놀고 온 나라를 금수의 지역에 빠뜨리고 있 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 이에 미치면 분이 쌓여 낮이고 밤이고 잠을 잘 수가 없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니 병이 점점 더해 가고 기운이 떨어져 두문불출 이 세상과 영영 이별하려고 합니다. 근래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왕왕 많은 사람이 중도에 길을 바꾼다고 하는데 申芝秀 동 지가 그렇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옛 사람의 말에 사람이란 알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만일 신지수의 변절이 사실이라면 어찌 한심한 일이 아 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공(류인석)의 책임은 특별히 막중하여 의병을 하시는 일을 계속 하시리라 믿 습니다. 이 나라 士民들은 서로 전하여 말하기를 단발(斷髮)의 화를 면하게 된 것은 오로 지 귀공(류인석)의 덕으로 알고 있고 나라의 원수를 갚고 옛 제도를 회복한 것도 역시 공 에게 맡겨진 책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이 맡으신 책무가 주춧돌과 같으니 얼마나 무거운 책임입니까. 오호! 지금 주상이 내린 모든 법령은 개화파 간신들의 손아귀에서 나오고 있고 조선왕조 의 조종께서 닦아놓으신 터전은 장차 저들이 차지하는 바가 될 것이며 재정은 고갈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질 것입니다. 나(장충식)의 소견으로는 비록 子貢의 辯辭와 제갈량의 재 간으로도 난국을 풀기 어려운데 하물며 한 장의 상소와 두 주먹으로 어찌 이 나라 백성들 의 소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군자의 소망은 더욱더 절실하고 소인의 원한은 더욱더 깊 어 가는데 이것이 실로 공을 위하여 조석으로 걱정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공께서는 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