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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정유(1897년) 10月 국모(명성황후)의 국상을 마치고 모두가 상복을 벗자 남들은 모두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나 나는 홀로 흰 갓 흰 옷 흰 띠를 두르고 끝까지 두문불출 自靖 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자가 묻기를 “국상이 지났는데 상복을 벗지 않는 것은 예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면서 “공자의 경우는 어떠 했나요”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때에 따라 태평하지 않을 수가 있고 예의가 달라질 때가 있다. 무릇 임금이 돌아가시 고 새 임금이 즉위하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임금이 시해되고도 적을 토 벌하지 못한다면 장례를 치르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復讐大義를 중시하고 매장하는 예의를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周公이 예를 정하고 공자가 春秋를 쓴 이래 만 세토록 신하가 지켜 온 것인데 어찌 의롭지 못한 일을 성인이 말씀하셨을 리 있겠는가. 오늘 우리가 원수를 갚았다 할 수 있는가. 나라의 치욕을 풀었다고 할 수 있는가. 오 늘날 나라의 원수들은 방약무인하여 서울 장안을 활보하고 있고 왜놈들과 모의를 같이 하고 당을 만들어 나라를 뒤엎을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전에 비해 백배나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비록 지금 융숭하게 국상을 치렀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시신을 땅에 묻어 짐승이 뜯어 먹고 벌레가 빨아 먹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國葬이 끝났다고 하고 이에 따르라고 하지만 원수를 토벌하지 못하면 장례를 치르지 않으며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상복을 벗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소위 선비란 자가 홀로 모른다면 되는 것인가. 항차 지금 주상께서 우환을 당한 뒤 침식을 거르시다시피 하고 계셔서 오로지 국치를 설욕하고 흉도를 토멸할 생각뿐인데 국모의 제사를 아직도 철수시키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그 뜻이 우리 백성을 울리고 귀신을 움직이는 바라 할 것이다. 우리 신하된 사람으로 어찌 이에 순종할 수 있는가. 만고에 없는 大變으로 인해 참지 못할 일을 당하였는데 어찌 평상시의 전례를 적용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어찌 이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그 사람은 다시 내게 묻기를 “그러나 毅庵 柳麟錫의 「의리를 지키는 일」(處義)은 미진하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하였다. 나는 대답하기를 비록 내가 어리석어 알지 못하는지 모르지만 어찌 내가 스스로 의병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겠는가. 나는 오늘의 군자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것이나 능력이 미치지 않 아 장차 어느 날 하늘이 허락하여 毅庵丈과 손을 맞잡고 회포를 풀 기회가 있어 내가 말한 이 이치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면 천 가지 우려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