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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집 안에 떨어진 꽃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고 늙은 가시나무 밑에 잡초가 우거졌네 가는 사람 만 리 떨어진 關山 달을 보며 병든 이 몸이 가을바람을 맞으며 가네 가련하다. 누가 滄浪水 노래를 불렀는가 푸른 도롱이를 두르고 서니 석양빛이 붉도다 의병이 영월 간관에서 풀밭과 수풀 사이를 헤치며 서쪽으로 가는데 나는 병이 나서 따라 가지 못하고 말았다. 이 해 10월 단양읍의 병정(관병) 십수 명이 저들의 대장 명령이라 하여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집에 오더니 아들(張益煥)을 발길로 차면서 체포하였다.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각박 하게 그러느냐고 물으니 병정들이 말하기를 “익환이 비도(의병)에 들어갔으니 죄가 있고 없고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에 내가 꾸짖기를 “의병이란 復讎保形의 大義를 위해 일하는 것인데 이것을 죄라고 하니 당치도 않는 일이다.”고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듣 더니 양심은 있었던지 병정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잘하는 일이라 칭찬하였다. 다 음 날 아침 익환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가 굴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 여 한두 번 우리를 위협하였으나 나는 안심하고 의병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11월 張基濂이 또다시 은밀히 사람을 보내 나와 만나기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편 지를 써서 보냈다. 이 첫 추위에 기체가 만강하십니까. 군 업무에 얼마나 바쁘십니까. 나는 조상의 음덕 으로 이렇게 산골 타향에 떨어져 살다 보니 나이 벌써 6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나라 에 초상이 난 것을 돌아보니 時變이 망극하지만 내가 감히 앞을 내다보지 못하여 한두 사람의 뒤를 따라 義旗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병이 들어 집에 돌아와 누 워 있습니다. 힘은 없고 의지마저 약해지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부끄러움이 더할 뿐입 니다. 때때로 밤중에 통곡을 해도 그칠 수가 없으니 내가 저 구렁텅이에 빠져 죽는 것 이 내 분수요 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先民이 말하기를 “죽음은 태산과 같이 무겁 다” 하고 또 혹은 “죽음은 기러기 털과 같이 가볍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나 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쉬우나 義理를 지키기(處義)는 어렵다”고도 합니다. 내 가 처한 바는 바로 의리를 지키는 일이라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이름 없이 죽 을망정 이러니저러니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면서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 내가 창의한 죄는 족히 사형을 받아 마땅하고 유배당해 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