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page

257 단양을 출발하여 풍기를 거쳐 순흥과 영춘 그리고 마침내 영월로 가서 의암 류(인석) 선생 을 뵙고 再起를 도모하였다. 이로써 군의 사기가 다시 되살아나니 제천을 출발하여 충주 로 쳐들어가 적당 수 삼인을 처단하니 의사들이 용약하여 잃었던 사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적들은 왜놈들을 시켜 야밤중에 忠州成을 공격하니 의병이 적을 맞아 싸웠다. 무릇 12일 이 지나 성안의 군량과 탄환이 떨어져 더 이상 성에서 버틸 수가 없어 마침내 제천으로 퇴진하였다.(자세한 상황은 일기를 참조하라) 제천으로 퇴진한 후 의병의 중론이 하나같지 않아 인심이 점차 변해 갔다. 또한 의병 안 에 겉으로는 의병인 척하고 속으로는 적의 간첩인 자가 있어서 류인석 대장에게 극비리에 계책을 올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좌우에서 반대하는 자가 많아 시행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분이 나서 마침내 병이 되어 여러 날 나가지 않았다.(자세한 상황은 일기를 참조하라) 병신(1896) 3월 이 서울에서 충주로 달려와서 제왕의 군사(王師)를 자칭하고 우리 의병을 은근히 습격하려 하였다. 이에 중군장 安承禹가 출전하여 순절(전사)하였다. 마침내 우리는 충주성을 포기하고 제천으로 이동하였다. 느낀 바가 있어 시 한 수를 읊고 개탄한다. 영주 제천 땅에 오래 살았는데 꽃다운 풀 무성하고 버들가지 드리웠네 내가 백의종군한 것을 웃지 마시오 일편단심 나라 위해 복수하는 것을 내 어찌 사양하리 임진왜란이 엊그제와 같은데 그 원수들을 추대하여 정치하니 臣子로서 죽을 날이 바로 지금이 아니고 언제인가 가련하다. 수십 년을 등불 밑에서 공부하였으나 아직도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해산하지 못하였도다 제천에서 영춘을 거쳐 단양에 도착하였다. 모처럼 소를 잡아 군사들을 먹이고 위로하니 각 진의 의병장들이 배불리 먹고 마셨다. 우군장 李康年과 더불어 안승우 중군장의 제사 상에 올린 고기를 모두 군사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그러고 나서 청풍 괴산 음성 원주 제천 으로 행진하였다가 다시 영월로 돌아왔다. 이때 한여름이라 더위에 홑옷이 땀과 비에 젖어 악취가 나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장이 진중에 필목을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옷을 빨아 말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느낀 바 있어 시 한 수를 읊는다. 한 번 서로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밤새 내리던 비가 멈추어 하늘이 맑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