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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래 와 같이 의롭게 처신하는 법(處義之道)이 무엇인가를 적어서 열거하는 바이다. 갑신(1884년) 10월, 나라의 원수(김옥균 등 開化黨)들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분 연히 붓을 들어 시를 쓰니 다음과 같다 오랑캐의 학문이 몰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데 누가 임금을 보호하고 공을 세울 것인가. 아무리 삼천리 이 나라가 작다고 하지만 4백년 길러온 우리의 힘이 웅장하지 않은가. 먼 나라에서 강한 오랑캐를 불러들이는 자가 모두 이 나라의 世臣들에게서 나왔다고 하니 忠義心으로 가득 찬 내가 비록 맨 손이지만 임금의 치욕을 갚고야 말 것이다. 갑오(1894년) 6월, 나라의 원수(개화당)들이 또다시 당을 만들어 개화하겠다고 하면서 왜 놈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선왕의 典禮를 고쳐 기강을 어지럽혔다. 이에 나는 두문불출하고 절개를 지키려 하였다. 자정(自靖)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라 경상 충청 등 삼남(三 南)에서는 혼란한 틈을 타서 민중을 선동하여 이름을 東學이라 하면서 서양과 왜놈을 배 척(斥洋斥倭)하여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남의 산소를 파헤치는가 하면 남의 재산 을 약탈하였고 우매한 백성들을 현혹시키니 불과 한 달 사이에 동학당의 무리들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 나는 이런 때를 당하여 이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을 개탄하면서 몇몇 동지들 과 같이 향약(鄕約)을 설치하고 사람들이 동학당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로 하였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境內에 포고하였다. 옛날 말씀에 元享貞利(仁 禮 義 智)는 天道의 원리이자 人間 性品의 기본이라 하였으 니 하늘이 그 원리를 상실하면 모든 물체가 이루어지지 않듯이 사람도 만일 기강(신성 의 기본)을 상실한다면 이륜(彛倫)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동방은 비 록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으나 그 의관 문물과 예의 풍속은 추로(鄒魯:맹자와 공자)의 나라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칭찬하기를 우리나라를 동방의 문명 국[小中華]이라 하였다. 항차 호서지방에는 사대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 선비의 기상이 높고 백성이 공손하니 아무리 혼란한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이 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기강이 퇴패하여 西學과 같은 사설(邪說)이 횡행하고 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