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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참전일기의 개략을 대강과 의리관을 약술한 기록이며, 둘째는 변수록이다. 辯讐論은 문답 식으로 된 짤막한 의병에게 희생당한 유족들에 대한 변명서이다. 그리고 셋째는 일기이다. 日記는 장충식의 처의록이라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처의록이 총론이라면 각론인 셈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을미의병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가 를 극명하게 밝혀 준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선비의 「처의록」 또는 「처변록」이 라 할 수 있다. 장충식의 의병정신이 훗날 한국의 애국정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기록은 더없이 귀중한 문헌이라 할 것이다. (나). 처의록(處義錄, 의리를 지키는 기록) 처의록(處義錄) (원문 생략) 우리 조선왕조가 천명을 받아 개국한 이래로 성스런 임금이 계속 나와 광명이 거듭거듭 빛나고 아름다운 예악문물과 문화가 중국의 夏 殷 周 三代와 같았고 그로써 민심을 유지 하고 宗社를 반석위에 올려놓았으며 그 은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더할 데가 없 었다. 그러기에 나라 밖에 포악한 군주가 나와 荒馬와 같이 날뛰어 모돈(冒頓)과 같이 완 악하고 아골타(阿骨)와 같이 사나워도 우리를 쉽게 엿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해외 의 일개 작은 오랑캐(일본) 따위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이 나라에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온 백성의 마음이 해이해져서 그 本 心을 잃기 시작하였고 덕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세상이 날로 달라져 가더니 심지어는 朝廷에 흉악하고 간교한 무리들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 안으로 닦고 밖으로 물리쳐(內修外攘) 先王의 德業을 누가 회복할 것 인가. 나라의 變亂이 오늘에 이르러 극에 이르고 말았구나. 섬 오랑캐(일본)가 우리나라에 오더니 처음에는 우리와 통상하고 쌀을 달라고 하더니 다 음에는 정치를 같이 하여 나라를 함께 다스리자고 하였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의 衣冠을 찢고 훼손하여 저들의 풍속을 따르라고 강요하였다. 이러한 때 나라와 임금을 팔아먹는 開 化徒黨들이 저들 왜놈의 앞잡이가 되었으니 이렇게 통탄할 일이 또 어디 있는가. 나는 비록 미관말직에 있는 사람이지만 어찌 나라에 급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서도 앉 아 있을 수 있겠는가. 적을 불러들인 난신적자는 누구나 마음대로 처단해도 무방하다 하였 다. 꼭 재판을 하고 나서 처단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邪學(邪說異言)에 대 해서도 누구나 이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구태여 성현(聖賢)의 말씀을 기다려 처단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