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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어떤 물체가 될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어찌 나 같은 연약한 서생이 군사 일을 알리오마 는, 스승과 친구들이 진중에 나오고 그 일에 한 번 몸을 맡겼은즉, 분수 안에서 일하는 것 쯤이야 어찌 구차히 면할까 보냐. 드디어 몸을 내 놓고 일을 보았으니, 이것은 안공도 다 잘 아는 일이다. 여기서 그 보고 들은 일, 문서 보고 등을 기록하여 공의 사실을 기록한 문자를 만들었다. 그 체제로 말하면 대장소의 명령은 반드시 장소(將所)라 하고, 혹은 그 사실을 함께 썼으며, 공에게 관한 일만은 바로 그 사실을 썼으니, 이것을 보아서 이 글이 공을 위하여 지은 것임을 알게 함이다. 창황중의 사실을 기록하기란 원래 어려운 일이요, 자세히 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수년래로 여러 번 손을 대고 다시 원서암(元恕庵)의 교열과 류숙재(柳肅齋)의 참고를 겸하니, 처음 초본(草本)에 비해서는 자못 정밀하게 되었 다. 그러나 또 어떠한 흠이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모르니, 글을 만들기 어려운 점이 이러 한 것이다. 글을 이룬 후에, 공의 맏아들 기영(基榮)이 돌려 달라고 하므로, 숙재가 손수 한 책을 깨끗이 써서 거기에 응하니, 의를 좋아하는 데에는 나나 남이나, 예나 이제의 차 이가 없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글이 오래 두고 노력하여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 면서, 몸소 겪은 바를 서술하여 발문으로 붙인다. 이 글이 비록, 공의 사실의 만에 하나라 도 천양(闡揚)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역시 당시의 사변이 얼마나 컸고, 의가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만은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천년 후에 일어서도 오히려 중화를 높이고 이적 을 물리치는 길이 되어서, 비록 난적(亂賊)과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도 모두 천심(天心)이 끝 내 없어지지 않고, 중화의 명맥이 끝내 끊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이것이 반드시 당일 의 제공(諸公)을 위한 일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 슬프구나. 병오년 10월 28일(양력 1906년 12월 13일;편자 주)에 박정수(朴貞洙)는 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