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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川)의 동학당을 쳐서 그 괴수 차기석(車寄錫) 등을 죽이고 그 공으로 지평(砥平) 고을 원이 되었다. 그런데 동학당들이 왜적을 배척한다 자칭하였기 때문에, 갑오년 여름에 왜놈들이 크게 출동하여 침략해 들어와, 서울에서 변을 일으키고 8도에 가득 찼는데, 그 이유인즉, 하나는 동북쪽으로 청국을 치다가 패하게 되어 한 진영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없고, 우리 나라에 있는 자는 겨우 천백 명으로 세일 정도였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동학당을 격파하 여 그 피해를 제거했는데, 이 때, 우리나라에서도 군사를 출동시켜 동학당을 토벌해서 임 금께 침범하려는 것을 끊었으므로, 왜적과 서울 병정은 자연 한 당파가 된 것이다. 그리하 여 왜국을 개화(開化)라 이름하고, 정부의 관직이 모두 왜적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그러므 로 동학당을 죽인 자면 순서를 밟지 않고 고을 원이 될 수 있게 되니, 이에 엄문환(嚴文 煥)은 평창군수(平昌郡守)가 되고, 맹영재는 지평현감(砥平縣監)이 되었다. 그러나 선비들 간의 의논은 매우 비루하게 여겼다. 을미년 변에, 적신들은 개화하는 일이 혹시라도 방해 될까 염려하여, 왜적을 끌어들여 궁궐을 침범하여 국모께서 시해를 당하고 임금께서 욕을 보시게 되니, 의병이 조만간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영재는 원래부터 군사를 길러 왔으 므로 사람들은 그가 창의(倡義)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재는 잘 먹 고 지내는 데에만 도취하여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공과 이괴은(李槐隱 : 춘영)이 이미 김백선(金伯善)과 더불어 그 휘하의 군사들을 출동시켜 지평에서 원주로 들어오니 맹 영재가 백방으로 방해하였는데, 그 후 의병이 사방에서 궐기하여 온 나라가 물 끓듯 하니 맹영재는 그제야 두려워하였다. 전일 맹영재의 부하 최삼여(崔三汝)가 홍천(洪川)에서 일어 나 군사들과 함께 지평 고을 아문(衞門)에 와서 맹영재에게 같이 일어나자고 하며, 함께 따르면 의(義)가 크고 따르지 않으면 화가 있으리라는 의미로 타이르니, 맹영재가 부득이 그의 장수가 되어 행군하여 양근(楊根) 땅 미원(美源)에 이르렀다가 서 울 병정에게 몰려서 죽었다. 그 아들인 일호가 검은 옷으로 종군하여 먼저 최삼여를 죽이 니 그 아버지를 핍박하여 일어나게 하였기 때문이다. 아 아! 맹영재는 원래 선비들 공론에 죄인으로 지목되어 맹적(孟賊)이라고까지 이름하게 되었다가, 나중에 의(義)에 죽었다는 이 름을 얻게 된 것은 최장(崔將)의 공이었는데, 일호가 원수로 삼기를 이렇게까지 하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일호는 사실, 겉으로는 의병인 체하면서 속으로는 개화를 따르 며, 서울 병정과는 싸우지 않고 기호(畿湖 ; 경기·충청도) 간에 들락날락하면서 [‘영재가 잘 먹고 지내는 데에만 도취하여’서부터 여기까지는 서암(怒庵)의 말임.] 가는 곳마다 횡포를 부렸다. 대개 앞서는 심상희(沈相禧) 진에 붙었다가 배반하여 떠났고, 또 글을 본진에 보 내었는데 말이 극히 방자하였으며, 또 지평 수성장 안종엽(安鍾曄)을 위협하여 군량을 공 급하지 못하게 하고, 또 출전한 포수들 집에 가서 서울 군사가 그 가족을 도륙하기로 한다 고 공갈해서 포수들로 하여금 마음이 이상하여 의병을 배반하고 개화편으로 가게 하며, 각 진에서 죄를 짓고 망명한 자와 가만히 개화편에 붙는 자들을 모아서 소굴을 만들었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