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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고 하였다. ○ 대장소의 명령으로 정운경(鄭雲慶)·홍대석(洪大錫) 등을 불러서, 가리파를 막아 지키게 하였다. 떠날 때, 공이 교외에 나가 전송하고, 또 군사를 점고하며 음식을 먹었다. 처음 홍대석이 이강년(李康䄵)과 더불어 북창(北滄) 및 방흥동(芳興洞)을 함께 지켰는데, 두 장수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니, 공이 잘 안 될 것을 알고 홍대석을 불러다 원주를 수비하게 하였다. 처 음 문경(聞慶) 싸움에, 강년은 대석이 여러 번 기약대로 나와 주지 않은 것을 문책하였는 데, 대석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가서 장현(獐峴) 싸움에서 불리하게 되니, 대석은 또 그것이 유격장(遊擊將) 이강년 때문이라고 하며 서럽게 여겼다. 또 강년은 성질이 굳세고 모나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고, 대석은 호협하고 방탕(放宕)하여 두 사람의 성격이 서로 판이하였으며, 모든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한쪽은 방종하고, 한쪽은 완 고하여 점점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북창을 방어하게 되자, 유격군이 동요되니 적측에서 떠들어대기를, 그것은 홍아무개가 시킨 것이라고 해서, 마침내 대석이 대장소에 잡혀 가게 까지 되니, 두 진영의 장병들 사이에 거의 틈이 생기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대장소에서 친 히 가서 진정시킴으로써 겨우 소란이 그치게 되었다. 공이 유격군에는 원주 사람이 많다 하여 원주를 방어하는 싸움에 보내지 않고, 전군(前軍)은 모두 4군 사람이므로 원주로 보 내어 가리파(佳利坡)를 지키지 않으면 4군이 함몰한다는 뜻을 보이니, 이것은 공의 은밀한 뜻에서 나온 것이다. 대석이 창고를 함봉하고 가서, 유격군으로 밥을 먹을 수 없게 하니, 강년이 군량이 없어 서 급모하게 되었고, 또 공동으로 두어 달 동안을 막아 지켰는데, 진을 옮겨 원주를 방비 하러 가서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갔으므로, 강년이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공이 매양 사람들과 말하기를 “유격장의 마음은 신명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이것으로 얕잡아 볼 수 있을 것이 랴.” 하였다. 이때 또 중군(中軍)을 바꾸자는 의논이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적의 술수에 빠진 것이었다. 적들이 대개 이간질로 우리 두 장수를 빠지게 하여 서로 공격하게 되면, 이편의 방비가 허술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반드시 중군으로 방어하게 될 것이고, 중군이 패 하고 보면 이편의 중심이 흔들린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이때, 공으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하려는 자가 있어, 공이 장비를 단속하고 명령을 기다 렸는데, 이것은 적측에서 무엇이든 말썽을 만들어서 중군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게 하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중지되었다. ○ 별모장(別募將) 이필희(李弼熙)에게 통고하여 맹일호(孟一鎬)를 치게 하였다. 일호는 영재(英在)의 아들이다. 갑오년 동학 난리에 영재가 군사를 일으켜 원주·홍천(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