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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고 하였다. ○ 서신을 보내어 여주(驪州)의 부유한 집안을 타일렀다. 우익장(右翼將) 윤성호(尹聖鎬)를 보내었는데, 그 서신에 이르기를 “천지가 번복하여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였으니, 망극한 큰 변고에 누가 피를 뿌려 한 번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인가. 몸을 바쳐 도의에 죽는 것은 의병의 직책이요, 재물을 경히 여 기고 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부유한 집안 담당인데, 그 혈성(血誠)으로 따지면 마찬가지 라.” 고 하였다. ○ 신유일(26일, 양력 1896년 5월 8일;편자 주), 총독(總督) 김사정(金思鼎)이 군사를 거 느리고 왔다. 별모장(別募將) 이필희(李弼熙)가 숨은 포수와 영동(嶺東)에서 온 5초의 군사를 거두어 사 정에게 인솔시켜 보낸 것이다. 경암(敬庵)이 영 밖에서 글을 보내어, 황기룡(黃基龍)이 죄가 없으니 목 베어서는 안 된다 고 부탁하였는데, 공이 분명하게 따져서 회답하고 선뜻 용서하지 않았다. 27일(양력 5월 9일;편자 주), 친구 정만원(鄭萬源)이라는 이가 있어, 고추장을 보내며 반 찬을 하라고 하였는데, 공이 사퇴하며 말하기를 “온 군사들하고 다 같이 나누어 먹지 못할 터인데, 어찌 나 혼자만 먹겠는가.” 고 하였다. 경암(敬庵)이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남쪽 지방의 일이 불리하다고 하면서, 이 남규(李南珪)[이 때 안동관찰사(安東觀察使)였음.]의 간악한 무리가 속으론 개화를 따르고, 겉으로는 구식인 양하며 뭇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여, 개화의 의론에 끌어 붙여 적의 앞잡 이가 되려 하므로, 남북 각지의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여 다른 변고라도 생길까 염려된다고 하였다. 공이 회답하기를 “아아! 하늘의 뜻이 아직도 돌이키지 않은 탓이냐, 사람의 계교가 어질지 못한 탓이냐. 이 몸은 ‘의(義)‘자 하나에 붙여 버린 지 이미 오랩니다. 오직 노력하기만을 바랍니다.” 고 하였다. ○ 비밀히 한동직(韓東直)을 시켜서, 형편 보아 가흥(佳興)의 적을 치게 하였다. 여러 진을 규합 통솔하여, 형편 따라 진공(進攻)할 계획이었다. ○ 대장소에서 이완하(李完夏)로 장의장(仗義將)을 삼아 단양(丹陽) 땅 장림(長林)에 주둔 하게 하였다. 완하의 자는 문약(文若)이요, 본관은 전주(全州)인데, 참판 양연(亮淵)의 손자다. ○ 적의 기마병 수십 명이 황강(黃江)에서 죽방현(竹方峴)을 넘었다. 적이 유격장의 파수소(把守所)에 있는데, 마침 모여 식사하다가 한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생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