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page

233 공은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만으로도 벌써 체통을 잃었다.” 고 하였다. 근영은 전에 말하던 그대로 자진하여 원통함을 변명하고, 죽을 죄인으로 자처 하였는데, 이섭은 변명할 길이 없어 자못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이섭이 군중에 들어오 기 하루 전에, 의논하여 상훈(相薰)의 부자를 군중에 두어 두고, 이섭의 행동을 알아보기로 하여, 조준교(趙駿敎)를 시켜 선암(仙岩)에 가서 상훈과 그 작은 아들 장섭(璋燮)을 불러오 게 하였다. 의논하여 제천읍을 둘러 험한 곳을 따라 성을 쌓아서, 군사들로 몸을 숨기고 총 쏘기에 편하도록 하게 하기로 하였다. 이강년(李康䄵)이 적의 형세와 자신이 지은 효유문을 비밀이 적진 근처에 붙인 사실을 보 고하고, 또 소위 선유(宣諭)라는 것은 장적(張賊 : 기렴)의 무리가 만들어 낸 억설(臆設)이 요, 위에서부터 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고 하였다. 얼마 후 강년이 친히 와서 고하고, 좀 있다가 곧 떠났다. 몸소 성보(城堡) 쌓는 여러 군사들을 찾아 위로하고, 그 형세와 요해지를 지시하였다. 공이 군사를 통솔하기를 엄밀히 하여, 군사들의 사사로운 휴가 청원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질병이나 상고(喪故)가 있어, 정말 슬프고 동정할 만한 것을 보면, 근신하고 가긍히 여기는 뜻이 말과 안색에 나타나며, 돈과 물건을 넉넉히 주어 처리하기를 극진히 하였다. 참장(叅將) 한동직(韓東直)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모이니, 공이 맞이하여 위로하고 매우 즐거워하였다. 19일(양력 5월 1일;편자 주), 이범직(李範稷)이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서소모장(徐召募將)이 적의 형세와 근일 우리의 형편을 물어 왔으므로 공은 자세하게 회 답하였다. 남산토성을 쌓기 위하여 땅을 파다가, 바위 밑에서 옛날 둥근 구리가 거울같이 된 것을 얻었는데, 새겨진 잡문(雜文)이 전자처럼 되었으며, 그 가운데 명문(銘文)이 있는데 ‘천하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라.’ 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며 말하기를 “이 의거(義擧)가 어찌 천하에 두 번 있을 것인가.” 하며 바로 일작산성(一作山城)이라고 이름 지었다. 22일(양력 5월 4일;편자 주), 우군장 원규상(元奎常)이 글을 보내서 대체하여 주기를 청원 하였는데, 대장소에 품의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왜적의 첩자 권덕윤(權德允)을 저자에 내어다 총살하니, 대장소의 명령이었다. 소모장 이범직(李範稷)과 함께, 고장림(古場林)에서 군사를 점고 마치고, 범직은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니 공이 전송하였다. 이때, 정인설(鄭寅卨)등이 내포(內浦)에서 군사를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