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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을 나누어 싸움에 나간 군사들의 가족을 구제하게 하였다. 우군장(右軍將) 안성해(安成海)가 친병(親病)으로 사면하므로 원규상(元奎常)으로 대신하 게 하였다. 공이 밤에 나상헌(羅相軒)[공의 매부]과 더불어 “서병두(徐丙斗)가 개화에 붙고 의리를 어지럽힌 죄가 용서할 수 없다.” 고 말하자 나상헌은 말하기를 “지평 고을 원이 자못 은덕이 있어, 그곳 백성들은 혼란한 세상에 어진 원을 만났다고 생 각하며 자못 의뢰할 만하니, 잠시 유임시켜야겠다고 한 말이 진실로 의리에 벗어나긴 하지 만, 이것은 시속 무리들의 예사로운 말인즉 번거롭게 잡아다 죽일 것까지 있겠는가.” 하였다. 공은 말하기를 “적장의 원에게 은택을 바라고 의병 진중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니, 어찌 큰 죄가 아닌가.” 고 하였다. 나상헌이 말하기를 “지평 고을 양곡은 매우 부족한데 마구 독촉하여 바치게 한다면 고을 백성들은 굶어 죽 게 되고 말 것인즉, 은혜를 베풀면 면제해 주게 합시다.” 하였다. 공은 “군량을 공급하다 굶어 죽으면 이것 역시 의(義)에 죽는 일이다.” 고 말하였다. ○ 신지수(申芝秀)가 종사(從事) 최동찬(崔東燦)을 가흥(佳興)에 보내어 적의 형세를 정탐 하였다. 장차 진격하기 위해서였다. 공이 동헌 낡은 집에 앉아서 진법을 연습시키고 무예(武藝)를 가르쳤다. 전군(前軍)이 고립하고 약하므로, 5초(哨)의 병력을 더 보내어 북창진(北滄津)을 막아 지 키게 하였다. 글을 띄워 부유한 집안을 타이르며 군량을 공급하게 하였다. 그 글에 ‘오늘의 일은 부득 이한 것이다. 그만 두어도 되지만, 그만 두지 않는 것이나 그만 두어서는 안 되는데 그만 두는 것은 모두가 역리(逆理)다. 신명이 위에 계시니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는가.’ 하였다. 8일(양력 4월 20일;편자 주), 공이 친히 제문을 적어 홍대석·이희두(李熙斗) 등 일곱 군사 의 혼령에 제사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그대들은 어지러운 세월을 만났도다. 바다 도둑이 넘나들고 적신이 날뛰니, 기강이 무너지고 법도가 없어짐이 이보다 더할 수 없도다. 끝내는 국모께서 시해를 입고, 임금께 서 머리를 깎이어, 이 나라가 전부 이적금수(夷狄禽獸)의 지역이 되고 말았도다. 의기의 깃발 아래로 그대들 일곱 사람이 몸을 빼어 힘써 싸우다가, 나는 탄환에 맞고 거듭 불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