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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였으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숙맥(菽麥)을 대강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만대만년 이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일임을 알 것이다. 아아! 저들 국적이 왜적과 화친하자는 의논을 듣고 나와 임금을 위협하고 아랫사람들을 우롱하여 온 지 10여 년에, 끝내는 국모께서 시 해를 당하고 임금께서 욕됨을 당하며, 큰 법이 한 번 무너지자 금수가 되고 분양(糞壤)이 되니, 이야말로 천지간에 처음 있는 큰 변고인 것이다. 어리석은 이 몸이 자기 힘을 생각 지 않고, 선비를 영접하며 군사를 모집하여, 원수의 왜적을 토벌하고 쳐서 없애고 나라의 역적을 모두 처단하여 삼강오륜의 중함을 밝히고, 중화와 이적(夷狄)의 구분을 엄히 하려 하는 것이니, 사생을 불고하는데 승패를 어찌 생각하랴. 아아! 그대들이 저놈의 독한 칼날 을 만나서 일시에 모두 장현(獐峴) 싸움에서 목숨을 바치고 거듭 불에 타기까지 해서, 시 체를 분간할 수 없어 함께 한 무덤 속에 묻게 되니 그 정상을 말하면 참혹하고 그 의리로 말하면 크다. 그대들은 이미 죽을 곳을 얻었으니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내가 몸소 그대들 의 집에 가서 부모처자를 위로하고, 또 그대들의 무덤에 나와서 삼가 제문을 지어 박주를 드리니, 혼령이어 각기 흠향하라.’ 무덤은 제천읍 남산 5리 되는 남당촌(南塘村) 위에 있다. 6일(양력 4월 18일;편자 주)에 군기감(軍器監) 유해붕(柳海鵬)이 ‘본군 무기고에 있는 큰 활로 소뇌를 만들자’고 하므로 허락하였다. 이병회(李秉會)가 힘써 김헌경(金憲卿)의 일을 말하면서, 그가 민용호(閔龍鎬)의 당파라 해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허물로써 배척할 수 없으며, 또 민(閔) 역시 의거를 같이 한 사 람인즉, 마땅히 답서를 보내어 찬성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여야 할 것이며, 또 말썽을 일으 켜 해를 끼치는 자를 처벌하여 군율을 엄히 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니, 공이 대장소에 품의 하고 그 말대로 하였다. 대장소의 명령으로 청풍(淸風) 수성장(守城將)을 시켜 능강동(綾江洞) 김태룡(金泰龍)에게 로 보내었다. 김태룡은 원래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자못 특별한 절개가 있어, 가 족을 데리고 능강동으로 들어간 후로는, 담박하게 혼자 지내며 개화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다. 7일(양력 4월 19일;편자 주), 원주 사람 김사두(金思斗)로 중군 참모를 삼았다. 우기정(禹冀鼎)이 휴가를 청원하므로, 대장소를 경유하여 잠시 방문하였다. 영국(英國) 영사(領事)가 본진에 회답하는 글을 보냈다. ‘충의의 거사에 대해서는 극히 존경하는 바입니다. 만약 흉악한 금수 같은 자를 제거하여 국가와 생민을 구호한다면, 인간으로서 감명 깊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거리마다 늙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그 공덕을 칭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연이 극히 애매하고 괴이하였다. 대장소의 명령으로 주천(酒泉) 방수장(防守將) 송문옥(宋文玉)을 시켜, 주천에 있는 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