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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너는 일본 사람이니, 우리가 바다를 건너가서 너를 해칠 까닭이 없는데, 어찌하여 화친 한다는 명목을 빙자하고 저들 적신(賊臣)을 유인하여 음험하고 교활한 흉계를 꾸며, 국모 (國母)를 시해하고 임금을 겁박하여 우리나라를 오랑캐로 만들려 하느냐. 이러고도 벌을 받지 않으면 하늘 이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에 패하여 죽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 고 하니, 적이 죽여서 불태웠다. 그 아들 여실(如實)이 가흥으로 가서 쌓인 시체의 무덤을 헤쳐 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대개 시운이 적을 죽인 것이 가장 많기 때문에 특별히 적의 악감을 사서, 다른 시체는 묻으면서 시운만은 불태운 것이었다. 아아! 시운이여, 그 의기가 매우 장하도다. 병이 나은 후에 다시 온 것이, 정말 의에 죽을 뜻을 가진 자가 아니면 하 지 못할 일이다. 그 당시의 장령과 사졸들이 모두 그와 같았다면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회 복하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었으랴. 내 생각으로는 나공(羅公)을 의병의 제일인자라고 하겠는데, 궁벽한 시골에서 정당한 거 론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거의 저 수천(壽天)의 일과 함께 묻혀 버리고 말게 되었으니 아 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 조항은 김경달(金慶達)의 사적과 함께 추후에 듣고서 기록한 것임.] ○ 대장소에서 친히 추치경(秋致敬)의 가족을 찾아 위문하고 타일렀다. 대장소에서 저물게 돌아오니 공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영접하였다. 개화의 새 법이 호조(戶曹)를 탁지(度支)로 고치고, 그 장관을 대신(大臣)이라 하는데, 판 서 심상훈(沈相薰)이 그 장관이 되었다가 서울에서 본가로 돌아왔다. 그 아들 주서(注書) 이섭(理燮)이 의병에 종군한 지 두어 달 만에 문득 가흥(佳興)에 가서 적을 정찰한다 칭하 고, 홍병진(洪炳晋)과 더불어 함께 떠나 바로 서울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모 두들 괴이하게 여겼는데, 이날 그의 서신을 받아본즉 ‘위로부터 칙유(勅諭)가 내려 의병을 해산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게 하려 하시니, 의병으로 서 위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요, 또 의병이 일어난 후로 소란만 더했을 뿐이니 어 찌 왕명을 거역하는 의병이 있겠소. 그러다가는 외국 군사가 공격하게 될는지도 모르니 하 루 속히 방침을 정하는 것이 좋겠소.” 라고 하였다. [심·홍 2사람의 글은 여기까지임.] 이때, 해외 각국이 서울로 구름같이 모여드니, 그 괴상한 형상은 역사가 있은 이래 듣지 못하던 일이다. 일찍이 배와 수레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왕래하는 길조차 모르는 나라들인 데, [이 구절은 옛날 중국 역사를 빌어 말한 것임] 군사는 아라사(俄羅斯)가 제일 강하고, 기술은 서양이 제일 교묘하다고 하나, 우리 편에서는 그들이 귀신과 도깨비처럼 보여서 흉 악 망칙하기만 하다. 그런데 무릇 개화 적당들로 의병을 견제하는 자들은 모두 이것을 빙 자하여 배경을 삼고 은연중 공갈 위협하니, 위태함이 현실의 의리로 천신하기 어렵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