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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 후군의 여러 장수 채동집(蔡東集)·홍귀봉(洪貴鳳)·임도봉(林道鳳)이 독곡(獨谷)에서 전 사하였다. 적이 광동에서 다시 독곡으로 들어오므로 후군에서 막았는데, 세 장수가 기운을 내어 앞 장섰다가 함께 죽으니, 사람들의 말이 “후군의 3의사가 적을 쳐부쉈다”고 하였다. ○ 대장소의 영을 받아 글을 발송하여 각 읍 수성장에게 타일렀다. 그들이 이르기를 “들은즉 각 읍에서 걸핏하면 복구(復舊)한다 칭하고 아전이나 군교(軍校)들이 급료미(給料 米)를 마구 끌어들인다고 하는데, 대저 복구라는 것은 선왕의 법제 예절과 의관 문물과 일 정한 공급을 두고 함이요, 아랫사람들이 용간을 부려 제 몸을 살찌게 함을 말하는 것이 아 니다. 지금 추한 오랑캐는 한창 치성하여, 백성의 힘은 이미 다했으나, 군수 관계의 잡비 는 오히려 이들 백성에게서 나오고 있는데, 그것을 절제 없이 함부로 맡겨 두면 되겠는가. 각자가 조심하고 신칙하여 후회를 남기는 일이 없게 하라.” 고 하였다. 이필희(李弼熙)의 보고에 ‘군량이 계속되지 않아 뒷일을 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소임을 갈아 주기를 청하였는데, 대장소의 영을 받고 허락하지 않았다. 윤성호(尹聲鎬)가 가평에서 보고하기를, “민의식(閔義植)이 서석화(徐石華)와 함께 강릉으로 달아나서 민용호(閔龍鎬)와 합쳤다.” 하므로, 공은 명령하여 “속히 흩어진 군사를 수합하여 군사들의 마음을 위로해 가지고 돌아오라.” 하였다. 죄인 유용길(劉用吉)을 잡아 심문하였는데 용길은 제 형수를 구타하고 또 적의 심부름꾼 이 되었으므로, 공이 대장소에 보고하기를 “놓아 주면 평민들에게 해를 끼치리라.” 하며 총살하였다. 포군(砲軍) 김수돌(金水乭)이 전군에서 죽어 영구(靈柩)로 돌아왔는데, 공은 마침 옷을 벗 고 잠자려 하다가 벌떡 일어나 나가서 곡하고, 벼 2섬과 돈 20냥을 주어서 구휼하게 하였 다. 전군장(前軍將) 이정의(李正儀)가 군중에 와서 자세하게 장현(獐峴)의 사실을 말하며 군사 를 더 보내 달라고 청하였는데, 대장소에 품의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주천(酒泉) 사람 김만동(金萬東)[천인임]으로 정탐을 삼아 충주로 보내었다. ○ 새로 들어온 김태원(金泰元)의 군사에게 다짐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의 군사가 전군(前軍)으로부터 본진에 들어오자, 공은 영접하여 위로하 고 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