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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너는 우리가 부득이한 일로써 민력(民力)을 상하고, 공물(公物)을 허비하는 것을 모르고, 마치 이끗을 노리는 시장으로 아느냐.” 고 하였다. ○ 이강년(李康䄵)이 전군과 약속하여 수안보의 적을 쳤다. 강년이 군사를 조령(鳥嶺) 밑으로 왕래시켜, 기회를 보아 적을 쳐서 베고 생포한 것이 많 았으며, 또 지름길로 조령산성으로 들어가서 화약과 탄환을 탈취하였는데, 거느린 군사가 사실 매우 많았다. 마침 선군장 홍대석(洪大錫)이 자청하여 수안보의 적을 맡겠다고 하면 서 강년의 군사를 나가서 조령 길을 차단하게 하므로 강년은 그 말대로 하였는데, 전군이 이르지 않으니, 강년은 부총(副總) 정수봉(鄭壽鳳)을 시켜 진군하라고 하였으나, 대석은 서 울 병정으로 인하여 북쪽 경비가 점점 급해 가니 서창(西倉)의 수비를 옮길 수 없다 하여 그만 약속을 어겼다. 강년은 밤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서 본진에 보고하며 강력히 구원해 주게 해 달라고 청원하니, 대장소에서 종사 최병철(崔炳轍)을 시켜 전군을 독촉하여 구원 하게 하였다. 마침 광주(廣州) 산성장(山城將) 김태원(金泰元)이 5, 6초(哨)의 군사를 수합 하여 가지고 서창으로 지나가다가 전군과 합하니, 그제야 대석은 군사를 데리고 남쪽으로 가서 강년을 구원하게 되었다. 도중 충주 장현(獐峴)에서 적의 기병 수십 명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대석은 바로 덮치고자 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고개에 이르러, 미처 복병을 하기도 전에 적을 만나, 추성손(秋聖孫) 등 10여 명을 잃고는 분패하여 남쪽 으로 나가서 구원할 생각이 없어서 서창으로 다시 돌아와 주둔하였다. ○ 심상희(沈相禧)가 크게 적을 열수(洌水)에서 깨뜨렸다. 서울 병정이 여주(驪州)에서 심을 뒤쫓아 원주 어둔(魚屯)에 이르니, 심장(沈將)이 군사를 상왕사(霜旺寺) 좌우 쪽에 매복시켰다. 적이 군사를 풀어 사방으로 공격해 오는데 심군(沈 軍)은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적의 기운이 좀 풀리자 둘러싸고 공격하며, 장령 수십 명에게 함께 칼을 빼어들고 줄을 지어 서서 싸우다 물러나는 자를 제지하니, 군사들 이 모두 죽기로 싸우고 한 사람도 이탈된 자가 없었다. 그래서 적은 마침내 패하여 달아나 므로, 열수까지 추격하여 죽이고 생포한 것이 매우 많았다.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중 기현이 찾아와 제가 지은 격문 한 편을 드렸는데, 의병의 거사 를 크게 찬양하였고, 또 몸소 종군할 의사를 보이므로, 공은 불러 들여 말하기를 “너는 사명조사(四溟祖師)가 임진년 공신임을 알지 못하느냐. 충의의 성품은 사람마다 같 이 타고난 것이니, 어찌 승속(僧俗)에 고금(古今)이 다름이 있겠느냐. 너도 지금의 사명당 으로 자처해야 한다.” 고 하였다. 별진장 원우규(元友珪)가 급히 약환(藥丸)과 청삼(靑衫)을 청하므로 밤중에 보내 주었다. 이때 적의 경보가 매우 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