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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은 대장소에 품의하고 임명한 것이다. 공은 서병두(徐丙斗)를 엄중 히 심문하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머리 깎은 자를 불러 원님이라 부르고, 수성장을 배척하여 가짜라 하니, 그 죄 가 목 베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 하였는데, 병두가 대답을 못하므로 가두었다. 공이 좌상의 손을 대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조남명(曹南冥 ; 東植)의 상소문에 ‘대단한 위엄으로 진동시키지 않으면 풀어진 죽과 같 은 형세를 수합할 수가 없고, 큰 장맛비의 은택으로 적시지 않으면 7년 가물에 말라붙은 싹을 소생시킬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을 알겠다. 대저 인종 (仁宗)·명종(明宗)의 성세(盛世)에도 이러했는데 지금 흩어지고 말라붙은 것이 어찌 백배만 더 하겠는가.” 고 하였다. 종사 조헌룡(趙憲龍)을 곤장 때려 가두었다. 처음 대장소에서 헌룡을 전군(前軍)에 보내어 양곡을 조사하고 군대 식사를 감독하도록 명하였는데, 60냥 이상의 돈을 범포하였으므로 전군장이 그 죄상을 논한 보고가 있어 벌만 받고 사형은 면제되었으나, 군중에서 한때 웃 음거리로 전파되었다. ○ 대장소에서 이필희(李弼熙)로 진동장(鎭東將)을 삼아 원주를 지키게 하였다. 이원하(李元厦)로 중군을 삼아 원주를 지키게 하였는데, 이제 또 지키는 군사를 더 보내 게 되었다. 떠날 때 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한(漢)나라 세조(世祖)[고조(高祖)의 잘못일 것임]가 ‘군사를 출동시킬 때마다 머리털과 수염이 희어진다’고 하였는데, 군중의 고생이란 크나 작으나 모두 그러하다.” 고 하였다. 공이 항상 말하기를 “군사에 관한 일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의(義)라는 한 글자는 익히 연구한 것이니, 오늘 날 고집할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그러나 의라는 것은 다른 별것이 아니고, 다만 죽을 때 까지 도를 올바르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지혜와 맹분(孟賁)· 하육(夏育)[모두 중국 고대의 용사]의 용맹이라도 나는 부러울 것이 없고, 또 양보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처지를 생각하면 무슨 다른 소망이 있겠느냐.” 고 하였다. 예천(醴泉) 군사가 문경현(聞慶縣) 북면(北面) 평천(平川)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여주진의 총령(總領) 최기락(崔耆樂)이 본진에 와서 심장(沈將)의 의사로 지휘받기를 청하 자, 공이 대장소에 의견을 자세히 말하고 사절하였다.[이것이 공의 고명한 견식으로 다른 사람이 못 미치는 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