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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행하게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몸 둘 곳을 모르겠소이다. 대저 춘추의 법으로 말한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란 먼저 그 당(黨)부터 없애야 하는데, 의병을 일으킨 이후로 비록 이 렇다 할 공은 없지만 지방에 있는 적당들이 차례로 목을 바쳐 왔고, 서울에 있는 역적 괴 수도 몇 놈이 없어졌으니, 기필 원수를 갚고 형체를 보전한 후에야 그만 두겠소. 그러나 모든 것이 운수가 있으며 반드시 되는 것만도 아닌즉, 오직 나의 의(義)를 다할 따름이니 무슨 앞을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일이 있겠소.’ 하였다. 심상희(沈相禧)의 후군장(後軍將) 원용석(元容錫)이 심장(沈將)의 의사로써 본진(本陣)의 절제 받기를 청하여 와서 하루를 머물고 떠났다. 소모장 이범직(李範稷)이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범직이 천안(天安)에서 돌아오다가 청주(淸州)의 적을 만나 군사 수백 명을 상실(喪失)하 고, 겨우 10초(哨)의 군사로 가흥(佳興)에 와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왜적을 쳐부수는 일을 같이 하였다가, 이제야 도착하였다. ○ 참장(參將) 한동진(韓東直)이 가흥에서 물러나 복탄(福灘)에 주둔하고 있었다가, 원주 의 흩어진 군사를 집합해 가지고 왔다. 덕산면(德山面) 파수장 이구현(李九鉉)과 그 무리 양성만(梁成萬)·김동춘(金東春)이 모두 잡혀왔는데, 구현·성만을 가두고 특별히 동춘을 목 베었다. 이범직(李範稷)이 하루를 머물다가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길을 나누어 같이 남쪽으로 나가서 복탄(福灘)에 주둔하였다. ○ 정수봉(鄭壽鳳)이 영남으로부터 와서 하루를 머물고,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이때, 이강년(李康䄵)이 군사를 동창(東倉)에 주둔하고, 수안보의 적을 치려 하므로 수봉이 가서 합세했다. ○ 좌선봉 김백선(金伯善)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대장소에서 목 베었다. 그리고 종사 민의 식(閔義植)을 뒤쫓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였다. 의식은 여주(驪州) 사람인데, 교활하고 방종하며 군중의 계율(戒律)을 어지럽히니 선비들 이 미워하였다. 그래서 공은 충주에 있을 때에 건의하여 목을 치려다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백선이 차차 공에게 맞서는 것을 보고, 가흥(佳興)에서 돌아와 가만히 백선을 교사하여 못된 짓을 행하게 하였으니, 대개 지평(砥平) 사람으로 군중에 있는 자들을 끌고 가서 백 선과 함께 따로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선은 군사들에게 그 뜻을 통하고 헛된 말 을 조작하여 그 형적(形跡)이 보이니, 군사들의 마음이 들떠서 장래 어떠한 화단이 생길지 모르게 되었다. 이 날 의식은 추포(秋浦)에 있으면서 들어오지 않고, 백선은 그 계책을 가 지고 본진으로 들어오는데, 중군 이하 모두가 진중에서 나와 자기를 영접해야 한다고 하 며,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를 쳐서 사람들을 겁나게 하며 행동이 몹시 소란하였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