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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공이 조심하고 근면하며 군수 물자를 몹시 아꼈다. 항상 말하기를 “예전에 우리들은 한낱 선비로서, 위로 관청을 받들고 아래로 이웃과 접촉함에 있어, 관 청의 세금이나 사가(私家)의 빚을 하나라도 밀리게 되면 형벌과 욕이 뒤따랐던 것이다. 지금 와서 공금을 취득하고, 백성의 재물을 징발하여 자기 물건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것은 부득이하여 하는 일이니 조금이라도 낭비가 있다면 그 죄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 가.” 하였다. 막료 중에서 혹 기름(燈油)이나 초(燭) 같은 것을 욕심대로 가져가면, 그 중심한 자 몇 사람을 곤장 때렸다. 그리고 매양 방문을 닫고 탄식해 말하기를 “이 백성들이 구렁 속에 빠져 있으니 내가 어찌하여야 할 것인가.” 고 하였다. 이때 상감께서 아라사 공사관으로 파천해 계시고 궁궐만이 비어 있으므로 역당(逆黨)들 이 전권하여 현감이 되고 군수가 되었는데, 이속과 백성 중 무식한 자들은 대의(大義)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예전 생각만 하여 그들을 중히 여기고 이편을 경히 여겨서 가는 곳 마다 일을 방해하였다. 충주 원 정기봉(鄭基鳳)이 부임하였다 한다. 단양(丹陽) 박종항(朴宗恒)이 청풍 현감이 되었다. ○ 지평(砥平) 고을 수성장(守城將) 안종엽(安鍾燁)이 공문을 보내어 서병두(徐炳斗)를 논 죄(論罪)하였다. 병두는 지평 향교 소임인데, 아전 김교항(金敎恒) 등과 함께 속으로 딴 생각을 가지고 지평현감의 유임을 청원하며, 의병의 지휘권을 침탈하여, 수성(守城)하는 절차를 시행하지 못하게 하고, 또 넉넉한 집안에서 군비를 공급하는 것을 못하도록 방해하니 한 사람도 양 곡을 내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공은 대장소에 품의하고 군사를 보내어 잡게 하였다. ○ 단양 원 박종항(朴宗恒)을 권유하였다. 종항이 와서 뵈니 공이 말하기를 “한결같이 옛 제도를 되찾는 것을 급무로 삼으며 이속이나 백성들을 진무하되, 의리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고, 역도(逆徒)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그 문자를 반포하고, 그 취지를 선동해서 천지간의 큰 한계와 명분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게 하라.” 고 하였다. ○ 13일(양력 3월 26일;편자 주), 광주(廣州) 산성장(山城將) 김태원(金泰元)의 패보(敗報) 를 받았다. 안종엽(安鍾曄)의 보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