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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두 장수가 수안보를 치다가 함락시키지 못하고 군량이 계속하기 어려워 오래 있을 수 없 으므로 그만 회군하였다. 이번 행군에 두 장수가 적 10명을 죽이고, 이편 군사는 아무런 손해 없이 퇴각하였는데, 대석이 서창(西倉)에 와서 보고하기를 “다섯 놈의 적만을 잡았을 뿐이고 그 소굴을 소탕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처벌을 받아, 군중의 규율을 엄숙히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집사(執事) 함재하(咸在河)가 망건(網巾) 1벌을 사달라고 청하였는데 값이 6냥(兩)이라 하 므로, 공이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6냥짜리는 내 분수에 사치스럽지 않느냐. 3, 4 냥 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사 주겠다.” 고 하였다. ○ 7일(양력 3월 20일;편자 주), 이인영의 종사 이구채(李球采)가 도망하여 왔다. 이인영(李麟榮)이 패하자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용문산(龍門山) 속에 숨어 있었음]. 이 때, 앞서 심상희가 한진국(韓鎭國)을 죽이고 그 군사를 빼앗을 적에, 부장 유흥문(柳興文) 이 부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붙이고서 구채로 하여금 종군하게 하니 구채가 응종하지 않 았다. 이때 와서 흥원이 또 굳이 구채를 요구하니, 공이 구채가 그에게 살해될까 두려워하 여 답서를 보내고 구채를 보내지 않았다. 충주 포군 김해길(金亥吉) 등을 보내어 전 중군 이경기(李敬器) 휘하의 흩어진 군사를 수 합하게 하였다. 왜의 통역사 김인석(金仁石)을 베었다.[한치(閑峙)에서 생포한 자임.] ○ 대장소의 명령으로 지평 수성장(守城將)을 명하고, 그 지방 부유한 집안의 재물과 양 곡을 징발하여 군비를 돕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공은 지평 사람인데, 지금 독촉해 받아들이는 일을 먼저 이 지방에 시행하느냐.” 하고 물으니, 공은 말하기를 “이익 되는 일은 멀고 생소한 데서부터 주어야 하고, 거둬들이는 것은 친하고 가까운 데 서부터 하는 것이 도리다. 원래가 그렇다.” 고 하였다. ○ 8일(양력 3월 21일;편자 주), 중군 종자 주영섭(朱永燮)을 대장소의 명령으로 곤장 때 리고 파직하여 돌려보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의 방자하고 횡포함을 호소하므로 죽이기를 청하였는데, 대장소에서 허 락하지 않고 곤장을 때려 가두었다가 이튿날 놓아 보냈다. 또 이경기(李敬器)의 사실을 호 소하므로 죄 주기를 청하였는데[경기의 사실은 위에 보임],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