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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어왔다. 심상희(沈相禧)의 군사가 재차 원주에 들어와서 이인영의 중군(中軍) 한진국(韓鎭國)[심상 희가 의병의 세력이 날마다 줄어짐을 보고, 가만히 사람을 서울에 보내어 저편에서 발급하 는 배의표(背義表=의병을 배격한다는 증서) 수백 장을 얻어 가지고 양쪽으로 다 안전할 계 획을 하며, 한진국에게도 친지라 하여 그 표를 내어 주니 한이 손에 칼을 빼어들고 꾸짖었 다. 그래서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인영은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고 그만 먼저 달아났다.] 을 죽이니 흩어진 군사를 통솔할 자가 없었는데, 심(沈)이 그 군사들을 빼앗고서 제게 절 제(節制)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구실을 삼았지만 사람들이 매우 옳지 않게 여겼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심진(沈陣)을 대우하여 재물이나 양곡을 청하는 대로 주면서 함께 일을 치르기로 약속하였는데, 어찌하여 이토록 옳지 않은 처사를 하는가. 심지어는 우기정(禹冀鼎)이 구원 을 청할 때에 우리 군사더러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까지 비방하고 지금 또 우리를 따르는 군사를 이렇게 학대하니 이는 참소하는 말들이 그를 격동케 하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사궤(司饋) 최열(崔烈)이 소를 잡아 군사들을 잘 먹이고 고기를 좀 가져다 드렸는데 공이 받지 않으며 말하기를 “자기 배를 불리기 위채 먼저 큰 계율(戒律)을 범할 수 없다.” 고 하며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권숙(權潚)이 처단된 다음, 그가 감추어 둔 금전과 물품이 매우 많다는 말을 듣고 그곳 아전들에게 책임을 지워 바치게 하였는데 마침내 허탕치고 말았다. ○ 대장소에 청해서 여러 군사들을 독려하여 나가 가흥(佳興)을 치게 하였다. 이때 포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 조종사(趙從士)를 보내어, 그 초(哨)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강년(李康䄵)을 도와 수안보의 적을 토벌하게 하였다.[종사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다.] ○ 후군장 신지수(申芝秀)가 나가, 충주 강녕리(江寧里)에 주둔하였다.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이 이강년과 함께 수회리(水回里)에서 조령(鳥嶺)으로 진군하였다. 김병대(金炳大)로 원주 수성장(守城將)을 삼고, 홍우범(洪祐範)으로 수성중군(守成中軍)을 삼으니, 김사정(金思鼎)의 말에 따른 것이다. 병대는 일찍이 홍산(鴻山) 고을 원이 되어 공 적이 우수하니 선비와 백성들이 만인산(萬人傘)을 만들어서 호화롭게 하였다고 한다. ○ 6일(양력 3월 19일;편자 주), 청하여 포상(褒賞)하는 규정을 반포하게 하였다. 왜놈을 벤 자에게는 머리 한 개마다 돈 5백 냥씩을 주게 하였다. ○ 대장소 명령으로 포군(砲軍) 한성원(韓性源)을 원주에 보내어 이인영의 흩어진 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