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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 대장소에서 이강년(李康䄵)으로 유격장을 삼았다. 이때 시각을 다투어 나가서 수안보의 적을 공격하였다. ○ 서문 밖에 나가서 진 치는 법을 연습하였다. 이에 앞서 이근영(李根永)[서울 사람인데 개화파(開化派)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의병을 돕 는다 청탁하고 와서 의병소 소임에 참여한 자이다.]이 서울에서 돌아와 보고하기를 “양·광주(楊廣州) 의병장 김태원(金泰元)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가 차지하고 있어 위세(威勢)가 매우 성한데, 서울 관군이 장차 진공하려 한다.” 라고 하였다. ○ 임백현(林百鉉)의 보고 문서를 판결하였다. 박제규(朴齊逵)가 돌아와서 백현의 보고를 올렸는데 “죽어도 어찌할 수 없다.” 고 하였다. 공이 판결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의(義)에 죽는데 그대만은 재물에 죽으려 하느냐” 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통쾌하게 여겼다. 이병회(李秉會)가 자기 아버지를 뵈러 가는데 공은 문 밖에 나가 전송하였다. 병회는 서기의 직을 맡아 보았는데, 군무에 숙달하고 총명 민첩하며 글씨를 잘 쓰고 문서와 군안(軍案)에 익숙하여 본군 보좌원 중의 제일이므로 공 은 매우 사랑하였다. 특별히 문밖에 나가 전송하는 말이 “한 팔을 잃어버린 것 같다.” 라고 하였다. 병회의 자는 원일(原一), 호는 우련(又蓮)인데 평창 고을 사람이다. ○ 지수(申芝秀)가 종사를 보내어 보고를 대장소에 올렸다. 이때, 후군은 추포(秋浦)에 있었다. ○ 권호선(權灝善) 이 영춘 고을 포병(砲兵) 16명을 얻어가지고 왔다. ○ 김응량(金應良) 등 10여 명이 왔다.[충주 포병이다.] 윤명섭(尹鳴燮)이 충주에서 돌아왔다. 처음 명섭이 종군하여 충주에 왔다가, 군사가 퇴각 할 때 적에게 잡혀 죽게 되었는데, 통역 한 놈이 명섭과 잘 아는 사이라 구원해 주어 죽 음을 면하니, 공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재생한 사람이라.” 하였다. 명섭이 자세히 적의 정세를 탐지하여 그들이 밤새 광주로 향한 때문에 가흥 병참(兵站)소 가 비다시피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진군할 계획을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