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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왔다. 아장(亞將) 이원하(李元厦)가 휴가를 얻어 본집으로 돌아갔다.[평창(平昌) 사람으로 포를 잘 쏘았는데 종군하여 충주읍까지 왔던 것이다.] 종사 박인호(朴仁鎬)를 매포에 보내었다.[이필익이 감추어 둔 돈 4백 냥을 찾기 위하여서 였다. 그가 돌아올는지는 알 수 없다.] 선봉 김백선(金伯善) 등을 거느리고 진 치는 법을 서문평(西行坪)에서 연습하였다.[백선은 지평 사람인데 성질이 사납고 무식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겨 걸핏하면 군중을 소란하 게 하였다.] ○ 청하여 사량소(司糧所)를 설치하였다. 제천에 들어온 후로 창고 맡은 이속에게 군량을 공급토록 했었는데, 이제 비로소 의병소 (義兵所) 종사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였다. ○ 청하여 ○을 목 베었다. 척후하는 기마병이 한 중을 잡아 심문한즉 “사자산(獅子山) 법흥사(法興寺)에 거주하는데 양식 구걸차로 충주에 왔다가는 길이라.” 고 하였다. 공은 의심하여 중의 몸을 수색하니 왜적이 보내 준 물건이 있으므로 명령하여 죽이게 하였다. ○ 청하여 이범재(李範載)를 목 베었다. 범재는 원래 충주 순검으로 의병에게 잡혀 죽게 되었는데, 서소모장(徐召募將)이 그의 총 명하고 민첩함을 애석히 여겨 죄를 용서하고 곁에 있게 하였다. 그 후 영남에서 글을 써 범재를 시켜 전달하게 하였다. 그런데 범재가 진중으로 들어오자 그 행동이 몹시 수상하였 다. 즉, 군의 정세를 살피고, 진중의 사무를 묻되 지나치게 자상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의 심을 하게 되었다. 공은 문초하여 그 사실을 캐내니 군중이 모두 놀랐다.[이때 의병 중에 는 이런 인간들이 매우 많았으니 정말 행동을 고치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로 보면, 옛날의 주처(周處)·대연(戴淵) 12) 같은 사람은 역시 기특하지 않은가.] ○ 여러 장수들이 사사로이 고기 반찬을 먹는다고 고하는 자가 있으므로, 공은 군법 위반 으로 처벌하자고 청하였는데 당분간 용서하기로 하였다. 공은 민첩하고 씩씩하며 영특한 기운이 얼굴에 나타났다. 언제나 죄수를 논고(論告)하고 12) 주처 : 옛날 중국 진양(晋陽) 지방의 사람이었는데, 젊어서 지방을 마구 싸다니며 행패가 심하니 당시 사람들 이 남산의 호랑이와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함께 ‘3해(三害)’로 불렀다. 그러나 나중 오(吳)나라로 들어가서 는 학문을 힘써 배워 악한 성품을 고치고 나라 일에 충실하였으며 뒤에는 진(晋)나라의 어사중승(御史中丞)으 로 제만년(齊萬年)의 반란군을 토벌하여 힘써 싸우다가 죽어서 효후(孝侯)라는 시호를 받기도 하였다. 대연(戴 淵) 역시 진대(晋代)의 사람인데 소시에는 불량한 행동을 많이 하였지만 나중에는 품행을 고치고 국사에 충실 하였으며 영의군도독(領義軍都督)으로 반란군을 쳐서 공을 세웠으며 나중에는 적과 싸우다가 몸을 희생하기까 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