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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며 무시로 왕래하며 싸우기를 수 없이 했다. 그러나 싸울 때마다 우리 편에서 이기고 하였 다. ○ 장소의 명령으로 성 위에다 다시 작은 성을 쌓았다. ○ 밤을 이어 남산을 지키다가 날이 밝은 다음 성중으로 들어왔다. 이때 날씨가 매우 춥고, 바람이 거세어 노숙(露宿)하는 장졸들은 모두 얼어서 제 얼굴빛 이 없었다. ○ 계축(17일, 양력 1896년3 월 1일;편자 주), 적이 단월(丹月)에서 다시 크게 쳐들어오 니 공은 성 안으로 들어왔다. 공이 산상을 굳게 지키려 하니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이런 심한 추위에 산마루에는 밥 지을 기구도 없고, 막사도 없은즉 오래 머물 수 없고, 적이 만일 에워싸서 길이 끊어진다면 이 이상 위태로운 일이 없은즉 성 안으로 들어가 힘 을 합해 굳게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니, 공은 부득이하여 그 말대로 하였다. 얼마 있다가 적이 산을 타고 공격하니 날아드는 포탄이 집을 부수는데, 우뢰가 공중을 가 르는 것 같았다. 대개 양포의 탄환은 멀리는 10리도 갈 수 있고 또한 빨리 쏠 수 있는 것 이라 조총의 대적할 바가 아니었다. ○ 우리 군사가 이틀 동안을 힘써 싸우니 적이 그제야 물러갔는데 19일(양력 3월 3일;편 자 주)에는 적이 가흥(佳興)으로부터 다시 들어왔다. 여기서 밤낮으로 크게 싸우니, 포탄이 공중을 누비는데 까막까치가 이따금 땅에 떨어지 고, 성 안에는 가옥이 완전한 것이라곤 한 개도 없고, 그 포성은 수백여 리 밖에까지 들렸 다. 또 바람은 심하여 깃대를 꺾어 눕히고, 추위는 얼어 활줄을 끊어뜨리는데 사졸들은 성 첩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혹 숯불을 공급하고, 밥을 갖다 주는데, 포탄이 부엌 벽을 부수 어 밥 짓는 여인이 놀라 거꾸러지고, 밥을 들고 높은 토성으로 올라가면 피 흘린 시체가 쌓여 있어 사람들이 모두 피하게 되므로, 군사들에게 대한 보급이 극히 어려웠다. 공은 싸 울 때마다 앞에 나서서 독려하며 사졸들에게 명령하여 헛총을 쏘지 못하게 하였다. ○ 이 날(1월 19일, 양력 3월 3일;편자 주) 신시(申時)에 입암 주용규(立庵 朱庸奎)가 포 탄에 맞아 순절(殉節)하였다. ○ 적이 사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성으로 올라오므로 우리 군사들이 포살(砲殺)하기를 무 릇 28차나 하였다. 적은 성을 쉽게 함락할 수 없음을 알고, 사닥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성으로 기어오르는데 사면에서 포를 쏘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그 틈을 타서 올라오므로, 우리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