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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주읍 주산]을 진동하였다. 군사 중에는 겁을 먹고 물러서려는 자도 있었지만 공은 손에 칼 을 들고 독려하였으므로, 사졸들이 일제히 분발하여 바로 북문으로 들어가는데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규식은 항거할 수 없음을 생각하고 가만히 아문(亞門)[남문 동쪽에 있는데 성에 구멍을 뚫고 작은 굴문을 만들었음.]을 열고 도망하였다. 드디어 북문에서 군사를 정돈하여 들어 갔는데 “왜병 몇 명이 부내 민가가 주밀한 곳에 숨어 있으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변을 일으키 려 한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공이 부중 사람들을 불러 그 사실을 물어보았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그 민가가 주밀한 곳에다 불을 놓으니 왜병이 불에 타 죽었다. 그러 나 불이 번져 민가 70여 호를 태웠다. 명을 내려 남의 물건은 조그만 것도 침범하지 못하 게 하고 ‘주민 중 강제로 삭발당한 자들은 불문에 붙일 터이니 주민들은 편안히 모여 안심하고 살 게 하라.’ 하였다. ○ 장소(將所)에서 지평(砥平) 포군(砲軍) 영솔장(領率將) 오장문(吳莊問)이 관부의 문서를 흩어버리고 주민을 공갈하였으므로, 군법으로 참수하여 머리를 북문 안에 달았다. 부중이 전부 비어 있으니 군인들이 왜적을 찾아낸다고 핑계하고 다투어 관부와 민가를 돌아가며 뒤지고 찢어 없애는 것으로 장기를 삼는 자가 매우 많았는데, 장문이 두목으로서 군령을 범하였기 때문에 참수를 당한 것이다. ○ 중군 종사 오명춘(吳命春)이 김규식을 잡아들였는데, 이튿날 장소(將所)의 명령으로 북 문 밖에서 목을 베어 장대 끝에 3일간 머리를 매달게 하고, 명춘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규식이 도망쳐 나아가서 가까운 지경에서 돌다가 사람의 고발을 당하여 마침내 사형을 당했으니, 진실로 하늘의 뜻이었다. 그의 강제 삭발한 해독은 어찌 한 개의 머리로 보상할 것이랴. ○ 공은 엄한 분부를 내려 불을 피워 놓고 성을 돌며 지키게 했다. 놀라서 흩어진 이속과 주민들이 차츰 돌아와 모이니 공은 여러 종사관으로 하여금 칼을 집고 성을 순시하게 하고, 또 주민들을 모두 안도(安堵)하게 하고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누워 자지 못하게 하니 대개 파산(巴山)에서 불 피우던 옛일 11) 을 따른 것이다. ○ 임인일(6일, 양력 1896년 2월 19일;편자 주), 적이 들어와 침범하므로 크게 싸웠는데, 11) 옛날 중국 진(晋)나라 장수 관정(管定) 등이 밤에 낙향(樂鄕)을 습격하면서 파산에서 불을 피웠던 일 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