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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 경진일(14일, 양력 1896년 1월 28일;편자 주), 민용호가 이미 방림(芳林)으로 들어갔 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병력을 합세하기를 청하였다. 용호는 빨리 강릉으로 가야 하겠다고 사절하면서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에 ‘장군이 계책을 단양에서 시험하여 사나운 무리들을 무찔렀으니, 난적으로 하여금 그 영 용(英勇)이 무서운 줄을 알게 할 만합니다. 또, 보잘 것 없는 이 몸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 고 친히 심방해서 중요한 임무를 맡기려 한다 하시니, 내가 비록 어리석지만 감히 공손히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 하오리까. 다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 있으니 저 영동(嶺東) 9군에는 곰과 호랑이 잡는 포수들이 집마다 있는데 이들을 빨리 수집하지 않으면 어떻게 적을 무찌르겠습니까. 지금 영동이 머지않은 곳에 있으니 나는 영을 넘고, 공은 영 서쪽과 4군(郡)을 돌면서 혹은 손발의 형세를 이루고 혹은 입술과 이가 되어야만 적의 머리를 벨 수 있고,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며, 한 곳에만 모여 있어 손을 묶여 확장할 계책이 없 고 비용은 많아 지탱하기 어려운 탄식이 있는 것에 비한다면 이해가 판이합니다. 엎디어 바라건대 재량하여 아뢰는 말씀을 들어 주신다면 나는 안심하고 노력하여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것이며, 혹시 하늘이 도와 살아 만나서 군막에 나아가 절을 드리게 된다면, 가시를 지고 무릎을 꿇고 원주에서 당돌했던 처사를 사죄하겠사오니 그렇게 알아주시오.’ 하였다. 공이 서신을 받아 읽고 웃으며 말하기를 “만나야 사정을 알게 될 것이니,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말하기 어렵다.” 고 하였다. 이속과 주민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공은 언제나 중화(中華)와 이적(夷狄),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을 들어 훈유하며, “이것이 옛날 성현들의 가장 주의를 요하는 점이니 일각이라도 판단이 흐려서 나아가고 등질 길이 어둡게 되어서는 안 된다.” 고 하였다. [이것은 선사(先師) 허형(許衡)의 ≪정법논어투(正法論語套)임≫.] 또 말하기를 “차라리 중화(中華)로서 망할지언정 오랑캐로서 존립할 수는 없으며, 사람으로서 죽을지 언정 짐승으로서 살 수는 없다. 대개 죽음이란 사람치고 면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 현들의 죽음에 대한 말이 퍽이나 많으니 이를테면 ‘올바름을 얻어 죽는다.’는 것이 그 예 다. 만약 몸이 오랑캐가 된다면 인간 도의는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이니, 이는 도리어 금 수만 못하므로 어떻게 구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배척을 받고 토벌을 당할 것뿐이니, 그도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금수가 금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랑캐가 오랑캐 되는 것도 역시 본색이지만, 만일 사람으로서 짐승이 되고, 중화 로서 오랑캐의 법을 쓴다면 이것이야 말로 큰 변이요 큰 악이니, 천지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일개의 평민으로 본분을 헤아리지 않고 다만 ‘난신적자는 누구나 다 베